루카 11,37-41
손을 잘 씻고 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름 위생 관념이 철저했습니다.
손이건 발이건, 그릇이건 제구건, 틈나는 대로 씻고 또 씻었습니다.
아마도 전염병이나 피부병 앞에 취약하던 당시, 걸리면 죽음이었으니 나름 최선의 예방책으로
그렇게 씻어댄 것 같습니다.
제 어린 시절 돌아보면 씻는 것과 관련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씻는 것은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 동네 목욕탕 가서 빡빡 씻는 것뿐이었고, 여름이 오면 동네 개울가에서 물장구치며 겨우 몸에 물을 대는 정도였습니다.
팬데믹 이후 전국민적인 손 씻기 열풍이 불어 저도 이제 수시로 손을 씻는 편입니다.
그런데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몸에 밴 습관처럼 뽀드득뽀드득 손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저와 같이 볼일을 보신 영감님들 칠팔 명이 단 한 명도 손을 안 씻고 우르르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제 입에서는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처럼,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손을 자주 씻는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시대 손 씻기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식사 전후, 외출 전후, 작업 전후 손 씻기는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질타하시는 것은 오로지 손 씻기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옆에 사람이 숨이 넘어가든 말든, 손 씻는 관습에만 혈안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틀과 형식 율법에만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우리 각자에게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억압이나 부자연스러운 제도나 관습, 대상들로부터 초월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해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 공동의 유익과 선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른바 규정이요 메뉴얼, 더 나아가서 법규요 헌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도적이고 법적인 요소들은 다른 무엇에 앞서 인간의 유익과 선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법적인 요소들이 강조되면서 웃기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보다 인간다운 삶,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제정된 법이나 규정들이 점점 강화되고 경직되면서,
나중에는 마치 부메랑처럼 인간을 힘들게 하고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율법 규정들, 특히 안식일 규정, 정결례 규정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발밑을 내려다봅니다.
혹시라도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본당 공동체 안에, 직장 공동체 안에서 그런 위험 요소들은 없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구성원 서로 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해주기 위해 제정된 룰이 오히려 관계를 파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살펴봐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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