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의사가 쥐를 가지고 행복 중추에 관한 연구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쥐의 행복 중추에 전극봉을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쥐들이 앞의 레바를 누르면 자기의 행복 중추를 자극할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자기 행복(쾌락)을 스스로 선택하게 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 조절을 하면서 레바를 눌렀을까요? 쥐는 계속해서 레바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 누르는 것입니다. 결국 정신 없이 누르느라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쾌락에 사로잡혀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인간은 다를까요? 쾌락에 빠져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합니다. 쾌락이 주는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 역시 계속 쾌락 레바를 누르고 있습니다.
계속 행복감을 느낄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지독한 우울감에 빠지게 됩니다. 행복 중추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우울 중추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 중추의 자극이 계속 강하게 주어지면, 바로 옆의 우울 중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100% 행복으로 보이는 쾌락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쾌락에서 벗어나는 삶이 중요했습니다. 순간의 만족뿐인 것을 계속 가지기 위해 행복 중추 레바를 계속 누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참 행복을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의 뜻인 사랑에 집중하며 부작용 없는 진짜 행복을 만들어야 합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서 왕자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초대장은 미리 보내는 것이 당시 풍속이었고, 임금의 손님이니 그 지위는 전혀 낮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잔치에 오지 않습니다. 임금이 다른 종을 보내서 다시 초대했지만, 이 초대에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종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임금의 권위를 부정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왜 그들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요? 임금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임금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는 하느님과 사람들이 맺는 새로운 계약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초대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임금이 군대를 보내서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리게 됩니다.
우리도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이 더 좋다면서 이 초대를 무시하고, 하느님의 권위를 무시했던 것이 아닐까요? 또한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은 예복을 입고 와야 하듯이, 하느님 나라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성실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존 드라이든).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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