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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11 조회수 : 689

루카 11,1-4 

 

기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법: 어린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그들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자 요한대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그 기도를 바치면 되는데 왜 예수님께 왜 또 기도를 배우려 할까요?

세례자 요한보다 예수님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각자가 바치는 각자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 기도문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합니다. 옆집 아이가 할 수 있는 말과 내 자녀가 나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곧 기도문 자체가 내가 누구인지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기도만큼 높은 기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기도를 바치신 분은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었습니다.

그 말을 가르쳐주셨다는 말은 우리가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나의 정체성의 확립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라고 하십니다.

기도의 목적은 나의 의로움과 하느님 나라를

구하려는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를 가장 잘하는 존재가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은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부모가 누구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확신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저녁마다 성당에 기도하러 들르십니다.

그런데 10초도 안 돼 다시 나오십니다.

본당 신부님은 매일 너무도 짧게 기도하시는 할아버지를 ‘기도할 줄 모르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마지막 때가 온 것입니다.

사제는 신자들과 함께 할아버지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제는 “할아버지, 뭐가 그리 좋으세요?”라고 묻습니다. 할아버지는 대답하십니다.  

 

“예, 신부님. 저는 기도할 줄 몰라서 매일 성당에 들러 ‘예수님, 저 왔어요!’라고 인사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매일 오셔서 ‘요셉아, 내가 왔다’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자녀가 된 행복이고 그분의 의로움은 그분께 하느님 자녀로 인정받음입니다.

위 할아버지는 다른 것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를 바칠 자격은 예수님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는 마태오복음에 나와 있는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와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가 빠져있습니다.

당시 여러 버전의 주님의 기도가 있었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였던 마태오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말을 많이 하는 것일까요?  

 

기도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말이 단순해집니다. 아기들이 “엄마, 엄마, 엄마…” 하는 기도가 더

셀까요, 아니면 많은 말로 부모를 설득하는 자녀의 기도가 더 셀까요?

부모를 말로 설득하려는 노력 안에는 부모에게 온전히 의탁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하게 엄마라는 말을 반복하는 아기가 부모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받습니다. 

 

주님의 기도나 묵주기도, 혹은 자비의 기도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데, 그래도 그러한 기도가 더 힘이 강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많은 말을 하는 기도보다는 기도가 단순해질수록 더 높은 수준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다 높은 수준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기처럼 그 단순한 “엄마!”란 말에 자기 온 감정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님의 기도라도 한 기도 말에 오래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선교사가 문명과 접하지 않은 한 섬에 선교를 들어갔다가 시간이 없어 주님의 기도만 알려주고 나왔습니다.

3년 뒤에 그 선교사가 그들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 주민들은 물 위를 걸어서 선교사를 맞으러 나왔습니다.

깜짝 놀란 그들은 선교사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저희가 선교사님이 가르쳐준 기도를 다 기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만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반복해서

바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이 아버지이신데 우리에게 불가능한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물 위를 걸어보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 말이 단순하다는 말은 그 말 안에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담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기가 반복하는 “엄마, 아빠!”란 말엔 아기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이 들어있습니다.

점점 어린이처럼 기도가 단순해질 때 기도는 더 높아집니다.  

 

저는 성체조배 할 때 주님의 기도만을 바칩니다. 보통 주님의 기도를 한 번 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기도할 때 호흡에 맞춰 숫자를 셉니다.

잠이 안 올 때 상상으로 양의 숫자를 세는 것과 같습니다.

숫자를 세면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분심이 되면 어디까지 숫자를 셌는지 잊어버립니다.

저는 주님의 기도를 끊어가며 바치고 그 의미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70번 호흡을 셉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도 한 번 바치는 데 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의 기도를 하며 성경 묵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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