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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09 조회수 : 614

루카 10,25-37 
 
참 사랑은 어부의 그물처럼 파견 받은 사랑 
 
 
세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면서도 가장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단어는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알면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 교사는 구원에 대해 묻고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이 틀렸다는 것을 금방 눈치챕니다.
골라서 사랑해보겠다는 뜻인데, 그 속내는 상대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를 이용하겠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하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명령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려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파견받지 않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 ‘500일의 섬머’(2009)는 남녀가 왜 서로 노력하는데 그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톰은 로스앤젤레스의 소규모 카드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로, 운명적이고 진정한 사랑을 믿는 젊은이입니다.
반면 섬머는 독립적이며 자유분방한 성격의 여성으로, 부모에게 버려진 기억으로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습니다.
그런 둘이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00일 뒤에 헤어졌습니다.  
 
영화는 둘이 헤어지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인지를 묻습니다. 먼저 느닷없이 친구 사이로 지내자고 한 섬머에게 탓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보다 보면 톰도 탓이 있습니다.
어쩌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톰은 섬머의 미온적인 태도에 지쳐갑니다.
함께 잠자리까지 하는 사이지만, 자신만을 사랑하겠다는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섬머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서도 노력합니다.  
 
어느 날 헤어짐의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술집에서 둘이 술을 마시는데 어떤 잘 생기고 멋진 남성이 섬머에게 치근덕댑니다.
섬머는 계속 싫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마치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일처럼 톰은 술만 마십니다.
섬머에게 치근덕대던 남자가 톰을 모욕했을 때 그제야 톰은 그 사람과 싸웁니다. 
 
이 일로 섬머는 헤어지자고 합니다.
톰은 섬머를 구해 주려 한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지 섬머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둘은 다시 만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섬머는 이제 운명을 믿는 사람처럼 이야기합니다.
둘의 만남은 운명이었지만, 짝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고. 그렇지만 여전히 톰의 손을 놓지 못합니다.
톰은 운명을 거부하며 노력만 하는 그녀와 이별을 선언합니다.
그러며 이젠 섬머처럼 운명의 여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하려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도전합니다.  
 
한 사람은 사랑은 노력하며 성장시키는 것으로 여겼고 한 사람은 먼저 운명이라고 믿어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무리는 서로의 연애관이 바뀌며 끝납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랑을 만날까요? 영원히 쳇바퀴 돌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사랑이 파견받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이 이혼율이 낮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하도록 파견받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웃을 찾아 나서려는 율법교사를 사랑하도록 파견하십니다.
파견 받아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적일 수 없습니다.
그 파견한 분을 위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를 잘 키워달라고 파견받습니다.
현대에서는 여성들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자녀에 대해 남성이 할 수 없는 여성들만의 능력이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만큼이나 자녀의 감정을 알아차릴 감수성이 없고 자녀에게만 집중할 능력도 없습니다. 
 
반면 남편들은 나가서 돈을 버는 데는 여성보다 유리합니다.
본인이 아기를 낳을 일도 없고 감수성이 무뎌서 더 냉정하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돈을 주며 자녀에게 파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에게 파견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자녀를 키우려 한다면 어떨까요?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외로움을 자녀를 통해 채우려 합니다. 본인은 이유 없이 자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자녀를 통해 부활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한다면 “내가 평생 너만을 위해 살았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니?”라며 서운해합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은 항상 부활을 전제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파견한 이로부터 그 보상과 부활을 추구합니다.
마치 어부에게 던져진 그물처럼 물고기에게 보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물에 대한 보상은 그 그물을 던진 어부가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파견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사랑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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