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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08 조회수 : 579

마태오 21,33-43 
 
사랑은 감사하는 이만 파견한다  
 
 
이탈리아 카시아에서 성체 기적이 있었습니다. 성체가 종이에 피로 변해서 스며든 것입니다.
그 종이는 감실에 모셔져 있습니다. 감실은 하느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성체가 그 사람 안에 살아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종이가 아니기에 성체를 모셔도 그분을 우리 안에서 죽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렇습니다.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의 외아들을 죽였습니다.
만약 우리도 못된 소작인들처럼 소출의 일부를 주인에게 바치지 않으면 우리 안의 그리스도를
그렇게 죽이게 됩니다. 
 
소출의 일부를 바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이 주인이 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두 주인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자기를 자기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아무리 성체를 영해도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살아계실 수 없습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서 자기 원수 같은 후배 직장 상사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에게
주인공 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그랬니? 너 지석이 엄마잖아. 애 엄마잖아. 너 그 새끼랑 바람피운 순간 너 나한테 사망선고 내린 거야. 박동훈 넌 그런 대접 받아도 싼 인간이라고.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그냥 죽어버리라고.” 
 
아내는 남편에게 파견받습니다.
자녀를 잘 키우라고. 물론 파견할 때 그 능력도 함께 받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다 가져다줍니다.
파견받음은 나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파견을 거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어부를 생각해 봅시다.
그물은 어부에게 파견받습니다.
그래서 그물이 조금이라도 뜯어지면 어부는 고이 손질합니다.
물고기가 거기로 빠져나갈 수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물이 자신에게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파견받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러나 그 파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자녀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흐를 수 없게 합니다.
그러면 사랑해도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돈을 벌어다 주며 파견하는 남편에게 사형선고 내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구약과 신약에서 다 하느님께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먼저 에덴동산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땅 소출의 일부, 곧 선악과를 바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라고 파견받을 수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파라오의 종살이 하던 때를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소출의 일부를 받아오라고 보낸 주인의 외아드님도 죽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 주님께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결국 서로를 사랑할 능력도 잃고 주님의 것이 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겐 자부로’의 『사육』에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한 일본 산골 마을에 미군 비행기가 추락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흑인 병사 한 명을 끌고와 지하 창고에 가두고는 짐승처럼 묶어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은 흑인 병사의 살갗이 벗겨져 염증이 생긴 것을 보고는 덫을 풀어주었습니다.
소년의 도움으로 흑인 병사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청에서 흑인 병사를 끌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흑인 병사는 지레 겁을 먹어 소년을 인질로 잡아서 난동을 벌입니다.
결국, 흑인 병사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년의 아버지가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감사의 선악과를 봉헌하지 않으며 그렇게 주님을 내 안에 인질로 잡아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성체를 영해도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이 이와 같습니다.  
 
아기 돼지가 엄마를 잃었습니다. 오갈 데 없는 돼지의 엄마가 되기 위해 코끼리 아줌마가
엄마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기 돼지는 코가 긴 코끼리 아줌마를 엄마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코끼리 아줌마는 자기 코를 잘라 돼지코로 만들었습니다.
아기 돼지는 피가 뚝뚝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모습과 같은 아줌마를 엄마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기 돼지가 엄마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하며 파견하신 분께 감사의 봉헌을 조금이라도 드릴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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