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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8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08 조회수 : 357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오늘의 포도밭은 하느님께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로 보살펴주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호세 10,1; 예레 2,21; 5,10; 6,9; 12,10; 에제 15,1-8; 17,3-10). 포도밭이라는 상징적 개념은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지는 혼인의 상징적 개념도 있다. 이사야서(5,1-7)는 상처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이 표현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여 그 포도밭이 좋은 포도를 내지 못하고 들 포도를 즉 불의를 내고 말았음을 개탄하는 것이다. 
 
이 포도밭 노래의 내용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에서 거듭 강조하신다. 마태오는 이스라엘을 주님의 포도밭이라는 문학 형식으로 구원의 역사의 어떤 단계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주인의 가장 사랑이 충만한 극적인 구세사의 마지막 여정은 상속권을 가진 당신 외아들의 파견이다.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구원을 위해 애쓰신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리렷다.”(39절). 그래서 모든 것이 헛되이 되고 만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그 죽음이 도시의 성 밖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되었을 때 그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듣는 사람들이 이 극적인 사건과 연루되게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사건으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41절) 대답한다. 
 
이제 이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 자신은 통해, 그리고 불충실한 이스라엘 대신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말은 “집 짓는 자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42절) 라는 시편 118,22-23을 인용하시어 하느님의 구원계획 중심에 당신이 계심을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의 계획을 무시하시며, 집 짓는 데에 쓸모없는 돌로서 버려진 그리스도를 당신의 새로운 구원의 건축에 쓰일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부활의 승리를 예고하며 구원의 역사가 십자가를 통해 여정을 계속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역사는 교회라는 새로운 구원의 공동체를 통하여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43절).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마태 3,8) 능력을 상실한 옛 계약의 백성 대신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하느님의 새 백성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중단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한 교회를 통하여 계속 전진한다. 악한 소작인들은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아들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시고 그 포도원을 되찾으셔서 새 소작인들에게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실이 하느님의 위대한 승리로 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본질적 특성은 행동하는 데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정통교리는 불충실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다. 하느님의 나라는 올바른 실천적 행위 속에 현존한다. 주님 교회의 본체에 대한 믿음은 행동적 증거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교회 공동체 안에 계시된 구원의 은총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내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기를 요구한다.”(G. Barbaglio, I Vangeli, Assisi 1975, p. 472). 
 
바오로 사도도 이 믿음의 행동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신자들은 본성적으로 진실한 것, 올바른 것, 고상한 것들을 실행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을 평가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는 기도로부터 얻을 수 있다(필리 4,6-7 참조). 그리스도인의 행동적 신앙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한 행동적 신앙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형제들과 더불어 인간 공동생활의 삶의 공통적인 가치와 요구를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면서 이 구원의 사업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평가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는 기도로부터 얻을 수 있다. (필리 4,6-7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행동적 신앙은 금욕주의 사상이나 순전히 인간주의적 사상이나 순전한 실천주의적 사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한 행동적 신앙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수많은 형제와 더불어 인간 공동생활의 삶의 공통적인 가치와 요구를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면서 이 구원의 사업이 계속될 수 있다. 이러한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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