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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0-07 조회수 : 543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음의 어머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면접 때마다 번번이 떨어졌어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면접에서도 떨어지게 되자 청년실업자는 회장님을 붙잡고 호소했습니다.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뜻밖에도 회장님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노모가 계시다고……, 그러면 발을 씻겨드리고 내일 다시 오게”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회장님의 요구대로 생전 처음 어머니의 발을 씻겨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발에 박힌 굳은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발이 아니었습니다.
거북이 등처럼 굳어진 발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발톱은 닳아 검게 오그라져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가셨던 길은 천 걸음인가, 만 걸음인가?’ 
 
아들을 위해 발이 닳고 피멍이 들도록 걸어온 어머니의 사랑과 슬픔의 흔적이었습니다.
청년은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지요.
어머니의 발을 만져보고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마음을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회사로 다시 찾아간 청년은 회장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장님은 저에게 어머니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면접도 마다하고 돌아서 나오는 청년에게 회장님은 말했습니다.
“되었네, 내일부터 출근하게”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일본 어느 기업의 면접시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장님은 왜 청년을 채용했을까요? 효자라서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죠?
몸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고객에게도 똑같이 관념이 아닌 가슴으로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으로 만져보세요.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출처: 유투브, 이어령 교수의 80초 생각나누기] 
 
‘어머니’라 부를 때, 이 청년에게 어머니의 발을 씻어주기 전과 후의 어머니란 이름의 차이는 분명하였을 것입니다. 
몸이나 머리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가슴’으로 느끼고 아는 것이 온전히 어머니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시며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육신을 나으신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영적으로 새로 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탄생 이면에 마리아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어머니라 하면서 우리를 낳고 기르시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느끼고 마음에 새기지 못한다면 온전히 성모님을 어머니로 아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교부들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교회가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이 곧 ‘성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아담의 옆구리에서 뽑아낸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듯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뽑아낸 피와 물로 교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피는 죄를 사해주고, 물은 깨끗해진 영혼에 들어오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피와 물, 즉 성사로 새로 태어난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죄의 용서(피)와 성령의 임하심(물)’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성체를 영할 때나 고해성사를 할 때도 죄의 용서와 성령의 오심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만 보면 성모님이 교회의 탄생을 위해 고생하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 은총을 중재해 주시는 분은 실제로 성모님입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그 피와 물을 담는 신비로운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5천명을 먹일 빵을 살 생각만 하지 감히 기적은 엄두도 못 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한 번도 기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예수님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얻어내셨습니다. 
그만큼 성모님의 믿음이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깨끗하고 완전한 그릇이기에 하느님을 품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에게 중재하시는 모든 은총은 바로 당신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피와 물입니다. 
따라서 은총을 중재하기 위해 성모님의 영혼은
예리한 칼에 찔리는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성모님께서 오늘 십자가에서 당신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당신 품에 안으시는 것은 당신 아드님을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피와 물의 은총입니다.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다시 살리시기 위해 어머니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보고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고통만큼이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셔야만 당신 아드님의 피와 물을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6.25때 한 겨울 어떤 어머니가 다리 밑에서 아기를 낳고 당신의 옷으로 아기를 감싸 당신은 죽고 아기는 지나가는 미군에 발견돼 미국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성장해서 한국에 찾아온 그 아이는 어머니 무덤에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드리고
‘얼마나 추우셨어요.’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라 불러도 성모님의 발을 씻어드리기 전에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어떤 고생을 하셨는지 가슴으로는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성모님이 십자가 밑에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 어머니가 되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영혼이 예리한 칼이 찔리듯 아플 것이라는 시메온의 예언을 깊이 깨달으며,
우리도 당신 아드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신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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