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57-62
더 가난해져야겠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만왕의 왕이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족이나 귀족처럼 살지 않으시고,
엄청난 부자로 살지도 않으셨으니, 오늘 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다 보면 정말이지 일관되게 가난한 삶이었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제한적이나마 극도의 가난을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가난하셨습니다.
과거나 오늘이나 사람 살아가는 것은 다 비슷비슷합니다.
사실 웃돈 십만 원만 내셨더라면 분만을 위한 따뜻한 방 한 칸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가정에는 그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아기 예수님께서는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마구간에서 동물들 사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참으로 극진한 자기 낮춤이요, 극도로 가난한 탄생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워낙 가진 바가 없었던 가 봅니다.
소나 양이 아니라 비둘기 두 마리를 예물로 바쳤습니다.
돌아가실 때는 또 어떠합니까?
당신 예언의 말씀대로 머리 기댈 곳조차 없어 허공에 매달린 채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운명하셨습니다.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일관된 극도의 가난, 그것이 예수님의 몫이었습니다.
예수님 인생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공생활 기간은 예외겠지, 했었는데, 웬걸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전도 여행길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럭셔리한 여행길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매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유랑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골고타 언덕이었습니다.
오늘 너무 가난해서 슬픈 우리를 위로해주시기 위해 가장 가난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겠습니다.
마침 오늘은 가난의 예수님을 단 한치 오차도 없이 온 몸과 마음으로 추종하고자 노력했던 성인,
그래서 마침내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입니다.
다른 그 누군가가 아니라 가난하셨던 예수님,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길을 나선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더 가난해져야겠습니다.
더 자주 비우고, 더 자주 떠나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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