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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9-24 조회수 : 475

마태오 20,1-16 

 

늦게라도 

 

 

우리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루 이틀 하고 끝낼 그 무엇이 아니라, 평생토록 지속되어야 할 긴 여행길, 즉 여정(旅程)입니다. 

 

여행하다보면 힘겨운 오르막길이나 만만치 않은 돌밭길도 만나지만, 때로 평탄한 지름길이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길’도 만납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순간, 뜨거운 사막도 거치지만, 때로 가슴이 확 트이는 천국같은 초원도 만납니다.

활활 타오르는 꽃같은 젊음의 순간이 있는가 하면,

급격히 쇠락하는 노년의 순간도 맞이합니다. 

 

주님 뜻에 맞갖은 정직하고 충실한 길만을 걸어가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때로 그릇된 길로 접어 들어 갖은 방황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아주 늦게야 주님을 만나는 인생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대체로 의기소침해하며 이렇게 하소연 합니다.

‘주님도 무심하시지. 왜 이토록 늦게야 당신을 만나게 하시는가?

이토록 늦은 나이에 이런 방향 전환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포도밭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오전 6시에 온 일꾼들에게도 하루 일당 10만원을 지불해주시지만, 오후 세시뿐만 아니라

오후 5시에 일하러온 지각생 일꾼들에게도 똑같이 일당 10만원을 손에 쥐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늦게라도 주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그분의 포도밭을 향해 초스피드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감지덕지하게도 똑같은 일당을 주시는 주님께 백번 천번 감사드리며,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주님 보시기에 멋지고 아름답게 계획하고 장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화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됩니다.

각 가정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수명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합니다. 

 

수도회·수녀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의 모든 수도회·수녀회들이 회원들의 노령화에 따른 대책 마련에 분주합니다. 

 

노년기에 직면해야 하는 도전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잘 예측하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의 기쁨이나 희망은 급격히 감소되어가는 반면, 고통과 외로움, 슬픔과 번뇌는 점점 커져감을 실감합니다.

몸도 예전같지 않아 이런 저런 질병에 시달립니다. 

 

인생의 무대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힙니다.

하루하루 뭔가가 내 안에서 소멸되어간다는 느낌에 우울감도 커져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란 존재의 사라짐,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네 삶과 신앙생활 전체를 흔들어놓습니다.

생각할수록 헛되고 허무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란 것을 파악하고 실망하는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는 이승의 삶을 얼마나 불꽃같이 살았으면,

얼마나 원없이 달릴 곳을 다 달렸으면, 이런 고백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살든지 즉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곧 이득입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필리피서 1장 20~23절)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 존재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이 지상에서부터 이미 그리스도를 온 몸과 마음으로 체험했고, 그분 안에 온전히 머물렀기에 그런 용감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나이들어갈수록 점점 지상의 것을 줄이고 천상적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상에서부터 천상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전부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용감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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