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8,1-3
감사가 거짓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을 다시 소환해서 매우 조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지만,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고인이 된 최성봉 씨 삶을 되돌아봅니다.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 맡겨지고 형들의 구타에 이기지 못하고 탈출하여 껌과 박카스 등을 팔며 1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 10년 동안 산에 산 채로 묻히는 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게 음악이라 성악을 하기를 원했고 다행히 그를 무료로 가르쳐 준 스승이 있어서 예고에 들어가고 대학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닐 돈이 없어 학교를 자퇴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습니다.
그때 그의 스승에게서 전화 한 통화가 왔고 2011년 tvN ‘코리안 갓 탤런트’ 준우승을 차지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휴대폰 판매원에서 세계적 스타가 된 영국의 폴 포츠와 합동 공연을 하며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코로나로 상황이 어려워졌고 다시 대장암 3기와 전립선암, 갑상선 저하증 및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 밝혔습니다. 암이 다른 곳으로의 전이가 일어났지만, 3억 대의 수술비 때문에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뛰어내리는 일은 막았습니다.
이때 10억 원을 목표로 후원금 모금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를 만났던 모든 사람은 그가 암 투병 중인지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입고 찍었던 환자복도 인터넷으로 구매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흡연과 음주, 폭식을 일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2천만 원 정도 모인 후원금은 유흥비와 여자친구와의 사치로 탕진했다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그는 이런 글을 올리고 생을 마감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잘못과 피해를 본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거듭 사과드립니다.
지난 2년여 동안 후원금 반환 문의해 주신 모든 분에게 반환했습니다.
이제는 죗값을 치르려 합니다.”
그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자선하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후원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왜 점차 희망이 아닌 불행을 팔기 시작했을까요?
불행을 파는 이유는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나의 불행은 내가 덜 받았다는 불만에서 나옵니다.
고 최성봉 씨는 그래도 당연해 보입니다. 부모에게 두 번, 세 번이나 버려지고 그가 말하듯이 자신에게 부모가 되어주겠다던 사람 중 하나도 자기 곁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보호해 줄 부모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몸은 컸지만, 어린이로서 보호받고 싶었는데 세상은 그를 이용하고 쓸모가 없어졌을 땐 잊었던 것입니다.
그는 더는 버려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여자 팬에게 사귀자고 할 정도였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 사람에게는 폭력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나의 불행을 파는 사람이 아닌 감사하여 보답하는 삶으로 이끕니다.
성당에서 성체를 영할 때 솟아나야 하는 감사가 이 전환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하지만, 진정한 감사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최성봉 씨의 마지막 글의 앞 부분입니다.
“제 삶의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보내는 글이면서 이 글이 보인다면 저는 이미 죽어있을 것입니다.
2011년부터 정말 많은 분들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 글이라 이 분통함을 알리고 싶지만, 여러분께 받은 사랑이 더 커 마음속에 묻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나름 노력하여 반환해 달라고 한 후원금을 반환하고 마지막 죗값은 안타까운 선택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나름 감사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감사는 내가 가진 돈이 어디에 쓰이느냐로 결정됩니다.
최성봉 씨는 그 돈을 자기를 위해 썼습니다. 감사한다면 그것을 감사한 대상을 위해 썼어야 할 것입니다.
돈이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결국 감사하는지, 아닌지가 결정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주님께 돌려야 하는 감사의 선악과를 자신들이 먹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감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감사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여러 여성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감사가 거짓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돈을 자기가 더 가지고, 더 즐기고, 더 높아지기 위해 쓸 때입니다.
삼구를 위해 돈을 쓴다는 말은 아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부모의 사랑만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참 부모는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분을 위해 보답하기 위해 돈을 사용합니다.
이를 봉헌이라고 합니다.
이것 없이 하는 감사는 아무리 찬미를 드려도 거짓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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