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7,1-10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무능한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의 깊이와 넓이를 잊지 않는 겸손!
백인대장 소유 노예의 치유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자주 강조하신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보기 드문 이방인 장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계급은 백인대장이었습니다.
백인대정은 로마 군사 조직 안에서 나름 힘과 권위를 지녔던 계급이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당시 로마는 스코틀랜드 산악 지방에서 시작해서 오늘 날 이란 동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파르티아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대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국경 도시였던 카파르나움에는 세관과 국경 수비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헤로데 안티파스는 자신의 군대 안에 여러 국적의 용병들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시리아인, 트라키아인, 게르마니아인, 갈리아인 등이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이방인 출신이지만 동시에 로마군의 장교 신분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유다 원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백인대장은 비록 이교도였지만 출중한 성품과 인성을 갖춘 인물로서, 유다인들로부터도 칭송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루카 복음 7장 4~5절)
이처럼 백인대장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동시에 지극한 겸손의 덕까지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신원을 늘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부정하고 죄인인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청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원 역시 유다인들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오는 것으로 확신한 나머지, 유다 원로들을 통해 자기 소유 노예의 병의 치유를 청했던 것입니다.
유다 원로들을 통해 백인대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백인대장 집으로 향하십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집을 향해 다가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백인대장은 너무나 행복하고 감격했지만,
동시에 크게 황송스러웠던 나머지, 2차 사절단으로 자신의 친구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복음 7장 6~7절)
우리 가톨릭 교회는 이 겸손한 백인대장, 유다 원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신앙을 소유했던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미사 전례 안에 수용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매 미사 때 마다, 탁월한 신앙인이었던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반복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진정한 신앙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지극히 무익하고 무능한 우리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의 깊이와 넓이를 잊지 않는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광대무변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우리 인간들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백인대장이 외친 겸손한 기도 뿐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는 심연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국 신앙생활이란 결국 무능하고 연약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광대무변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상봉하고자 발버둥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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