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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9-17 조회수 : 589

루카 9,23-26 

 

순교는 일상에서의 끊임없는 부활 체험의 결과  

 

 

오늘은 한국 순교 성인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순교는 순종의 피로써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신앙 행위입니다.

따라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이 살아내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려거든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순교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을까요?

바로 더 확고한 ‘부활 신앙’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반드시

그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 3,4)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희망 없는 순교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도 당신 죽음을 말씀하실 때 반드시 부활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순교의 열매를 위해 이 세상에서부터 부활의 확신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수 겸 타자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있습니다.

그 선수는 땅에 버려진 쓰레기가 남이 버린 운이라고 생각하여 경기 중에도 잠깐씩 쓰레기를 줍습니다. 

 

‘나’는 더 가지려 하고 더 평하려 하고 더 높아지려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를 줍는 일은 그러한 소유욕-육욕-지배욕과 반대의 행위입니다.

그러니 그가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순교입니다. 

이렇게 작은 순교를 하는 것은 그가 반드시 그렇게 해서 운이 온다는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너무나 큰 모험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우리를 그런 모험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자아의 종살이 할 존재가 아니라는 ‘자존감’입니다. 

 

그랜트 카돈은 마약 중독자였다가 억만장자가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을 쓰고

강연도 합니다.

그가 이러한 사람이 된 계기는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한 일 때문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부유하게 자라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시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 공허함은 마약으로 채우려 하였고 정신과 몸이 피폐해졌습니다.

아무리 마약을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죽을 고비도 몇 번을 넘기고 재활 센터에 들어가

한 달을 있었습니다. 

 

그는 마약을 하지 않고도 한 달을 버틸 수 있다는 것에 자기도 놀랍니다.

더 놀란 것은 마지막 날 그에게 “당신은 절대로 마약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인격적인 모욕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카돈은 집에 돌아와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보겠다며 앞으로 가족을 돈 걱정시키지 않게 하겠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결심이 집착이 되었고 그 집착이 그를 이전의 삶으로부터 구해 주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대한 집착이 결국 이전의 자신을 죽이는 힘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집착을 하도록 살과 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자아의 종살이 할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자존감으로 이 세상에서 이미 부활, 곧 천국을 체험해야 하고 그 체험들이 쌓여 나중에는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복자 황일광 시몬은 당시 가장 낮은 계급인 백정 출신입니다. 그러던 그가 당대 위대한 가문의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게 되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는 두 개의 하늘이 있다. 하나는 이미 이 세상에 또 하나는 후세에, 이렇게 해서 두 개다”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작은 순교를 통해 천국의 부활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그를 모진 고문을 이겨내게 하였고 순교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는 모진 고문에 “만 번 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님을 배반하지 않겠으니 저를 마음대로 해 주십시오” 하면서 의연했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은 박해를 피해 도망치다가 신자들을 버릴 수 없어 되돌아왔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이 사제로 부활하게 되었는데 자신도 신자들을 부활의 믿음을 심어줄 필요를 느겼던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삼구(三仇)와 끝까지 싸우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이는 두 분 다 자신을 죽이는 것이 곧 부활로 이어짐을 이 세상에서부터 체험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주님 말씀으로 나를 죽일 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기쁨을 맛봅니다.

이것들이 쌓여 결국 기쁨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고 싶은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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