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아픔을 공감할 때 나타나는 표징
오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묵상하는 날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고통은 예수님의 아픔과 그 결을 같이 합니다. 오늘은 두 복음이 나오는데 하나는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나중에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통 때문에 성모님의 영혼이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고 한 시메온의 예언이고 그다음은
골고타에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아드님을 보아야 하는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은 마치 아내가 아이를 낳기 위해 당하는 고통과 같습니다.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당하는 고통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교회는 예수님을
새 아담, 성모님을 새 하와라고 부르는 교부들의 신앙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 성모님으로부터 교회가 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골고타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요한을 아들로 맡기시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남편이 아내에게
자녀를 맡기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데 있습니다.
아내의 자격은 남편이 아내와 자녀를 살리기 위해 밖에서 고생하는 남편의 힘듦을 얼마나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만큼 구원자로 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분은 없으셨습니다.
영혼이 칼에 찔리는 고통을 누가 느껴보았을까요? 그만큼 성모님께서 우리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만약 배우자가 나에게 해주는 고통에 대해 잘 안다면 어떤 표징들이 나타날까요?
남편은 분명 자신이 번 모든 돈을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내어놓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을 믿으면 아내도 그 돈을 피같이 아껴 쓸 것입니다.
TV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 보면 아내의 과소비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이 나옵니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 ‘금전적 신뢰 깨진 폭탄 부부’를 보니 남편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내도 귀걸이 사는데 300만 원 쓰고 피부 관리받는 데 900만 원을 쓰는 내용이
나옵니다.
남편은 월 400씩 꼬박꼬박 가져다주며 자신은 한 달에 10만원 이상 써 본 적이 없다는데 아내가 그렇게 과소비하고 빚만 늘어나니 신뢰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도 비싸게 술을 마시고 다니고 한 것은 아니기에 대부분은 남편이 아는 것들이었지만,
카드 지출 내역과 통장 지출 내역은 남편에게 보여주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신뢰가 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치미에서 배우 주우와 김선희 부부도 비슷한 이유로 출연하였습니다.
김선희 씨가 지나치게 과소비한다고 남편이 고발하듯이 아내를 데리고 나왔지만, 사실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자녀를 키우며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엄마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남편은 자신이 매달 500씩 주는데 생활비는 700씩 들어가는 것에 신뢰를 잃어갔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모든 돈을 다 주는데 아내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혹은 아내가 돈을 얼마나 저축해 놓았는지의 재정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말은 남편이 돈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느끼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돈 쓰는 것을 일일이 남편이 안다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둘은 서로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그 피해는 아이들이 보게 됩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해 부부싸움을 많이 하게 되면 자녀는 생존 욕구가 강해지고 그러면 나쁜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신자들이 내는 돈에 대해 불투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신자들은 본당 사제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제와 신자들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좋은 자녀들이 탄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솔직하게 공개하고 혼날 게 있으면 혼이 나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본당에 내는 돈이 그들의 살과 피와 같은 아픔을 공감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레위기에도 신자들이 낸 봉헌은 거룩한 것이니
사제들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아픔을 아신다는 것과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 잘 연결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서로의 아픔보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더 중요하게 여겨 두렁이로 몸을 가린 것을 보면 연결이 쉬워집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자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그러면 관계는 끝난 것입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관계에서는 숨기는 게 없어야 합니다.
남편이 모든 것을 다 가져다주었다면 아내도 모든 지출 내역과 통장 잔고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영화 ‘허삼관’에서 하정우는 아내가 이전 애인의 아이를 배어 자신에게 시집왔었다는 것을 10년 뒤에나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의 아이를 키웠다는 생각에 분노하였지만, 키운 정이 작지 않아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계속 피를 팔며 자신은 죽어가다시피 합니다.
하지원은 남편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계속 피를 판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 신장을 아들에게 줍니다.
서로 상대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 때문에 나도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일이 사랑일 것입니다.
신뢰를 잃으면 내어줄 수 없습니다.
상대가 나와 가정을 위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알면 솔직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상대가 나를 위해 흘리는 피의 고통을 함께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요한으로 상징되는 교회를 맡기실 수 있으셨던 것은 당신의 피를 결코 헛되이 쓰지 않는 마음을 가지셨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배우자의 아픔을 공감할 때 나타나는 표징은 아마도 먼저 재정의 투명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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