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6,20-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은 명 강론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의 말씀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생명력이 있었으면 사람들은 그에게 ‘황금의 입을 가진 사람’이란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가 강론을 펼칠 때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그의 입만 바라봤답니다.
그리고 마치 금실처럼 술술 그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듯,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감명을 받고 눈물을 흘리곤 했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벌써 삼십 년 가까이 강론대에 서고 있지만 설 때마다, 늘 고민되고 부담스러우며 언제나 두렵고 떨립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없습니다.
대체 왜 그럴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준비가 덜 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하느님께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펼치려는 강론과 내 삶 사이의 큰 괴리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의 강론이 그토록 감동적이고 생명력이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강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선포하는 말씀을 온몸으로 살아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면서 묵상하면서 강론을 열심히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렇게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며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명 강론을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사제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론대에 섭니다.
때로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참 어려운 것이 강론입니다.
길면 길다고 뭐라 하십니다.
짧으면 준비 안 했는가 보다고 수군댑니다.
살짝 양념이라도 치려면 또 삼천포로 빠진다고 걱정들 하십니다.
강론을 듣는 대상은 너무나도 천차만별입니다.
누구에게 수준을 맞춰야 할지 언제나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론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을 찾아오면서 가장 바라는 것 중에 하나가, 피곤에 지친 일상에 위로와 힘을 건네주는 맑은 샘물 같은 신부님들의 한 말씀입니다.
그 한 말씀에 큰 위로를 받고 다시금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합니다.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인, 흥미진진하면서도 의미로 충만한 신부님들의 한 말씀에 신자들의 한 주간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니 강론 더 잘 준비해야겠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께서는 얼마나 강론 준비에 철저했는지 모릅니다.
강론에 앞서 깊은 묵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시대, 이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고민하고 성찰했습니다.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섰고, 자신의 삶을 통해 걸러낸 순금 같은 강론을
사람들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분의 강론 말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강론하는 동안 회개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론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났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은 기도 중에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 하느님의 음성을 세상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 대상이 절대 권력을 지닌 황제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말씀을 전했고, 언제나 꿋꿋하고 떳떳했습니다.
그야말로 쌍날칼 같았습니다.
그 옛날 선포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 시대, 우리 지도자들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 신기했습니다.
“저들의 법이 그릇되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에 불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는 땅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입니다.
만일 이 두 법이 서로 충돌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을 본받아 우리들의 입에서 진리와 사랑의 메시지, 희망과 격려,
기쁨의 말들이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우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위로의 말로 인해 우리 이웃들의 삶이 한층 밝아지고, 행복해지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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