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6,12-19
오늘도 부족한 우리를 통해 당신 사랑의 기적을 계속해나가시는 하느님!
요즘 한국 현실 안에서 많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스펙’입니다.
스펙이라하면, 사람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입니다.
졸업장, 취득한 자격증, 이수한 코스, 수여 받은 상장 등등.
그런데 열두 제자의 스펙은 사실 보잘것없었습니다.
스펙이 보잘것없으면 성품이라도 무난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대기 좋아하는 제자, 성격이 불같은 제자, 드러내놓고 아부하는 제자, 당대 사람들로부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받던 제자, 혁명으로 세상을 전복시키려던 제자...
공생활 기간 동안 제자들의 삶은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때로 불과 불이 만나 큰 문제가 생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때로 정치성향을 달리하는 두 제자가 부딪쳐 불화와 반목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때로 성숙과 극단적 미성숙이 만나 속병이 다 생겼을 것입니다.
두세 명은 참으로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충분히 배웠고, 도시 물도 먹었고, 배경도 그만하면 괜찮았습니다.
나머지 사람 가운데 대여섯 명은 그저 그랬습니다.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놔두셨으면 한평생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온몸으로 뼈 빠지게 땀 흘려
근근이 먹고 살 정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두세 사람은 ‘사도단’ 가입이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원래 노는 물에서 놀아야 되고,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이 사람 저 사람, 여기 출신 저기 출신, 이런 신분, 저런 신분,
한 마디로 ‘비빔밥’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부족한 사도단이었지만 인재양성의 귀재 예수님을 만나면서 놀라운 변화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강도 높은 특별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12제자들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12사도 각자 안에 깃들어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눈여겨보십니다.
그들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작은 사랑의 씨앗을 발견하십니다.
그 작은 가능성, 그 작은 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나를 포함해서 어쩌면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 부족한지 모릅니다.
때로 너무 한심해서 혀를 차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면서 ‘뒷담화’도 많이 나눕니다.
그러나 요즘 와서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부족하니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심하니 형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약하니 나를 통한 하느님의 도움과 위로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이 고귀한 사제직으로의 부르심은 무상의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가장 뚜렷한 표현이 바로 부르심인 것입니다.
오늘도 부족한 우리를 지속적으로 부르시는 하느님, 이토록 부족한 우리를 통해 당신 사랑의 기적을 계속해나가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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