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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9-03 조회수 : 315

복음: 마태 16,21-27: 자기 자신을 끊어버려라 

 

지난 주일과 오늘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베드로의 모습에서 지난 주일에는 메시아로 고백한 바위 같은 신앙과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걸림돌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항상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십자가 위의 죽음이란 체험은 모든 신앙인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오늘 전례에 나타나는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소명을 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너무나 강하신 분으로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도저히 꺼버릴 수 없는 불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오늘 복음은 곧 다가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예고와 그에 대한 베드로의 민감한 반응(마태 16,21-23)과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당신을 따라야 할 제자들의 의무에 대해 말씀하신다(24-27절).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십자가와는 무관한 영광과 권세로 가득 찬 현세적 메시아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23절).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세의 인간적 체계에 꿰맞추어 나름대로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서 신앙을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 신앙은 더는 하느님의 생각에 따르지 않고 인간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23절) 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앞으로 당하실 모든 것을 운명이나 숙명으로 돌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뜻으로 인식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21절). 하느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미래의 영광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당할 어려움도 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에서 떼어놓으려 했던 베드로가 이제 스승을 따라 그 같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면 베드로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으로만이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기까지 스승을 따름으로써 교회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4절).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지만, 이제는 또한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신”(마르 10,45) 수난당하는 종으로서도 고백해야 한다. 이 고백은 자신 역시 스승의 고통스러운 운명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이 지워진 메시아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아직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베드로에게는 참으로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25절) 하신다. 예수님의 권고 내용은 관심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말고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잃는 것은 곧 자신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밖에 관심을 두셨고, 당신을 잃으셨으며,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셨고(필립 2,7-8) 당신을 내던져 이웃들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셨지만, 부활 영광의 생명으로 당신 자신을 되찾으셨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는 없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고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해 우리 자신을 바치고 우리를 잃어버림으로써 그리스도와 이웃의 선익을 구함(필립 2,21)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십자가란 이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가진 신앙과 인간적인 욕구로 인한 갈등을 언제나 체험한다.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갈등하는 나 자신이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갔듯이, 그리고 주님께서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바치신 것처럼, 모든 갈등을 이겨내고 자신을 이기고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올바로 주님을 따르는 모습이다. 

 

사도 바오로도 십자가 위의 죽음의 체험에 덧붙여 말하고 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자신을 이기면서 바치는 영적 예배가 진정한 희생제물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는 아픔을 요구한다. 형제들에 대한 충실한 사랑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가 진정으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삶의 형태로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고백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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