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
[말씀]
■ 제1독서(예레 20,7-9)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가운데 예레미야만큼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동족들이 조금도 원하지 않던 것, 예를 들어 다가올 망국의 징벌을 예고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그 덕분에 그들로부터 저주를 받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그는 한때 예언직의 포기를 의미하는 침묵의 삶, 하느님의 말씀 선포를 멀리하려는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숙명적인 ‘꾐’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예수님의 삶을 예시하는 ‘고통받는 종’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간 예언자였다.
■ 제2독서(로마 12,1-2)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오로는 신앙이 선사해 주는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고 난 다음 이제 실천적인 결론에 이르고자 한다. 이 결론은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삶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기 자신을 주님께 온전한 영적 예물로 바치면서 신앙인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천해나감에 있어 올바른 분별력이 요구된다.
■ 복음(마태 16,21-27)
지난주 복음에서 주님께서 그를 기초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밝힌 신앙의 사도 베드로는 오늘 주님으로부터 혼쭐이 난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사탄은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존재이기에 하느님 계획의 완성인 십자가를 향한 여정에서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사탄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저버리고 주님처럼 그리고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 나갈 때 비로소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새김]
■ 지난주 말씀의 주제였던, 일정한 조직을 갖춘 ‘제도로서의 교회’, 그러나 교회의 이 모습 안에서 세속적인 성공의 단면을 찾아서는 안 된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교회는 세속적 투쟁에서의 승리라든가, 어려운 상황들을 일거에 제거하는 능력을 뽐내본 적이 없다. 교회의 운명은 오히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게 보이듯이, 실패작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세속적 힘이 없다고 해서, 세상의 어두운 상황 앞에 눈을 감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또한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어둠의 세력을 거슬러 싸워야 하며, 이때 주님께서 주신 가장 확실한 보증은,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탄생한다는 믿음이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이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주님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희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나서는” 사람들로 교회가 채워질 때 교회는 비로소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는 충직한 도구가 될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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