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3,13-22
때로 말씀은 나를 위로하고 일으킵니다. 나를 살게 하고 웃게 합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회심자(回心者)의 대표 인물인 성 아우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입니다.
그의 인생 여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갖은 우여곡절과 반전을 거듭했습니다.
그의 전기를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대하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생애는 하느님이 얼마나 자비하신 분인지?
그분께서 얼마나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분인지?
그에 비해 한 인간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생애는 그토록 나약한 대죄인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죄에서 성덕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멸망에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 아우구스티노의 지혜와 재능은 출중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탁월한 달란트는 오랜 세월 동안 올바르게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세속적인 성공만을 꿈꾸며 살다 보니 오로지 명예와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카르타고 대학과 로마, 밀라노에서 수사학과 역사학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쳤지만, 안타깝게도 마니교 이단에 푹 빠져 하느님을 등지고 짙은 어둠 속에 젊은 시절을 낭비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에게 회심의 은총을 불러일으키는데 계기가 된 한 은혜로운 만남이 있었으니, 당시 밀라노 교구 암브로시오 주교님이었습니다.
조금씩 진리이신 하느님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비참함과 한심함을 자각하게 된 그는 어느 날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아! 우리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들이냐?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온 힘을 다해 천국을 차지하려고 저리 노력하고 있는데, 나름 배웠다는 우리가 육욕의 노예가 되어 있다니, 이 무슨 꼴이냐?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운 일!”
마침내 방황을 거듭하던 아우구스티노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들고서 읽어 보라! 들고서 읽어 보라!”
방으로 들어온 아우구스티노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성경을 들어 펼쳐보았는데, 그의 눈에는 로마서 13장 13~14절의 말씀이 확 들어왔고, 그 구절은 마치 벼락처럼 그의 정수리로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통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때로 성경 말씀 한마디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 성경 말씀 한 구절은 성경 바깥으로 걸어 나옵니다.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심연의 장소에 머뭅니다.
나를 꾸짖고 내 삶을 휘젓습니다.
나를 위로하고 일으킵니다.
나를 살게 하고 웃게 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로 아우구스티노의 삶을 180도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릇된 지난 삶을 처절하게 가슴치고 뉘우칩니다.
보속하는 마음으로 남아있는 삶을 불꽃처럼 살아갑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죄와 과거를 아무런 가감 없이 적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해 베푸신 하느님의 큰 자비도 덧붙여 그 유명한 고백록을 저술합니다.
고백록으로 인해 삶을 바꾼 사람들의 숫자는 하늘의 별들보다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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