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때 이것만 하지 못하게 한다면 크면서 냉담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들은 사람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 백성이란 뜻도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믿음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거짓이 없는 사람만이 쉽게 믿을 수 있다고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이유는 믿음의 에너지를 거짓말에 소비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거짓말은 바로 내 안의 뱀이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하와를 하느님처럼 만들어서 하느님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방식은 하와 자신이 주님이 되고 창조자가 되고 심판관이 되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뱀은 자신이 하느님이라 믿게 만들어서 하느님을 대체합니다. 믿을 필요가 없게 합니다.
피노키오를 생각해봅시다.
피노키오에게 늑대가 다가와 서커스에서 공연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사실 구경거리가 되어 남에게 이용당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서커스를 무대에 오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제페토 아버지를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가 필요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늑대의 역할이 우리 안의 자아입니다.
늑대는 또한 피노키오를 어른 놀이하는 섬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는 어른들처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파티를 즐깁니다.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늑대에 속아서 아버지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처럼 되어가지 못하고 당나귀가 되어갑니다.
우리 안에서 자아는 우리 스스로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들어 정작 우리를 당신처럼 만들려는 하느님을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선악과를 바치지 않고 자신이 따먹어 주인님이 되고 육체적 욕망으로 행복을 추구하려 하며 스스로 창조자가 되게 했고 하느님과 이웃을 판단하며 스스로 심판관이 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러니 이미 창조자나 주님, 심판관이 있음을 믿을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입니다.
자아에게 속으면 그래서 하느님을 믿게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뱀은 이 거짓말들에 지속적으로 속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무화과 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게 한 것입니다.
그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 한 자신 스스로 주님이 되고 창조자가 되고 심판자가 되려고 했던 잘못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해지면 어떨까요? 금방 자신이 주님일 수 없고 창조자일 수 없으며 심판관일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나의 것이라 우겨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내 사람이라고 해도 헤어짐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결혼을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나의 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솔직해지면 자녀도 내 창조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눈도 다시 넣어줄 수 없고 생명도 다시 넣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해지면 누구도 나에게 재판관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판단을 참 심판관이신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듯 참믿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 믿어지지 않느냐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뱀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마치 복권을 사지 않고 당첨만 되려고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만 잘 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자라며 냉담하게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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