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성사를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환자 교우의 상태에 대해 여쭤보니, 병원에서 이제 해야 할 치료가 없다면서 마지막을 잘 준비하라고 했답니다. 낮에 두 군데에서 특강이 있어서 곧바로 가지 못하고, 저녁 늦게 그 집에 방문했습니다. 다행히 형제님께서는 아주 밝으셨고, 또 기운도 넘쳐 보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얼마 안 남았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더군요.
정성껏 병자성사를 드리고 성당에 돌아왔습니다. 그 가족에게는 매달 봉성체가 있으니 꼭 신청하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열흘쯤 지났을까요? 병자성사를 받은 형제님께서 선종하셨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과 함께, 병자성사를 드리기 전에 나눴던 대화가 마지막 대화였음을 깨닫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과연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만남 뒤에도 계속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만남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뒤로 미룹니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주님과의 만남에서도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성이 곧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만나기보다 세상을 만나야 하고, 주님의 일보다는 세상의 일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우리이기에 오늘 복음을 통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크게 와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억만장자를 비롯한 갑부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뜻보다 세상의 뜻을 더 중요해서 재물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권력과 재물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여깁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게 됩니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일에 매여 있으면 주님을 찾거나 청하지 않으며 또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만남에 온 정성을 쏟는 사람은 무엇보다 주님이 먼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보상을 백 배로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에 정성을 쏟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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