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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0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8-20 조회수 : 331

복음: 마태 15,21-28: 가나안 여인의 믿음 
 
오늘 복음은 가나안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강하게 믿음을 촉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시달리고 있는 이 여인의 딸을 낳게 해주시겠다고 하면서(마태 15,28)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다.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는 복음 선포가 모든 인류에게 향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사야는 당시 사람들에게 국가주의와 율법주의의 편협성을 버리고 보편적 구원론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이기에 외국인들도 개종하여 그분의 계시와 율법을 지키기만 한다면 구원해주시는 분이시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은 모든 민족의 고향이 될 것이며 그 성전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다(이사 56,6-7). 이러한 일치된 모습은 하느님을 모두 아버지로 깨닫고 흠숭할 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이 아니면 인류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는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앞에는 종족의 특권이나 신앙의 특권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불순종에 안에”(로마 11,32) 있는 ‘죄인’이라는 점을 깨닫는 겸손만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그분의 용서와 사랑이 필요하고 하느님은 이러한 조건에서만 종족을 따지지 않으시고 모두를 구원해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지만, 그것을 거부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태오는 예수께서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배타주의의 장벽을 무너뜨리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여인에게 붙여지는 가나안이라는 호칭은 종족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특성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 여인이 이교도라는 것이다. 우선 예수께서는 그 이교도 여인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시며 처음에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23절). 오히려 사도들이 그 여인을 도와주어야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24절).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도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10,5-6)고 하셨다. 그런데도 계속 간청하는 여인에게 더욱 가혹하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26절). 이 표현은 이방인을 가리키지만, 경멸의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점점 더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는 가나안 여인의 항구한 자세에 양보하신다. 이방인인 그 여인이 예수께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청한다는 사실 자체가 예수께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항변은 단호하기까지 한 예수님의 말씀을 무색게 하는 그녀의 믿음과 고통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7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의 집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주인의 발밑에 웅크리고서라도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 ‘믿음’에 탄복하시고(28절) 그녀가 원하는 은총을 베풀어주신다. 그 여인의 믿음을 갖게 해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여기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의 믿음이라면 어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겠는가! 즉 구원의 조건은 육체적으로 아브라함의 종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 예수님의 모순적인 태도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에 투신할 힘을 발견한 것이다. 사도들은 믿음의 가치에다 구원의 최고 능력을 부여한다. 이 믿음의 가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위해 하신 말씀의 가치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오늘날에도 이 말씀을 새로운 형태와 방법으로 선포함으로써 새 이방인들, 세례를 받았더라도 이 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혹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굳게 믿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신앙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포기되지 않는 항구한 신앙이어야 함을 우리는 가나안 여인에게서 보았다. 우리도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끝까지 항구하여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우리 모든 교우가 그렇게 되어 기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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