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있습니다. 100미터 달리기는 10초대에서 경기 자체가 끝납니다. 그렇다면 거의 10초대에 끝나는 경기라서 이를 준비하는 시간도 짧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그 짧은 순간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비지땀을 흘리며 엄청난 양을 훈련해야만 합니다. 만약 훈련을 전혀 하지 않고 시합에만 집중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이 세상 삶을 마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길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문제는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남들도 다 그렇다면서 자신의 준비 없음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아무런 준비 없이 우리 목표에 도달할 수가 있을까요? 무작정 하느님 자비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제 경기보다 훈련에 쏟는 시간이 더 길 수밖에 없고 또 더 중요한 것처럼, 지금 주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께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훈련의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결국은 모두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물 위를 걸으시어 제자들 쪽으로 가신 것입니다. 마침 제자들은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모습에 “유령이다” 하며 두려움의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맞바람이 부는 거센 파도에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알아보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주님이 아니셨습니다. 오히려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을 알아보는 것은 편하고 쉬운 삶 안에서만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거센 파도가 이는 고통과 시련에서도 주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결과만이 아닌 계속된 훈련, 즉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베드로가 청합니다. 예수님의 “오너라.”라는 대답에 그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지고 맙니다. 주님만을 바라봐야 했는데, 바로 거센 바람에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도 훈련이 계속 필요했습니다. 하물며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늘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의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참 하느님의 아드님과 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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