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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8-11 조회수 : 607

마태오 16,24-28 
 
명상과 기도의 차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영성 생활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까지의 나의 주인이었던 자아를 죽여야만 합니다.  
 
가리옷 유다는 자기를 비우지 못하고 돈을 섬겨서 예수님을 모실 수 없었습니다.
누구든 누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상대를 품을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보다 큰 하느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이 세상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영향을 받는 그 대상이 내가 섬기는 우상입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아주 커지거나 아주 작아지면 됩니다.
온 우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시에 어떤 것도 쪼갤 수 없는 수준으로 작아지면 그것도 아무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영화 중에서 우주에서 괴생명체가 지구에 추락하여 결국 그것들이 지구를 멸망시키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 우주를 멸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구로 보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들이지만, 온 우주로 보면 작디작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가 커져서 세상 것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노력을 ‘명상’이라고 합니다.
명상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나보다 더 큰 자아를 만들어서 그것을 제삼자가 보듯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입니다.
명상할 때 호흡이나 감각에 먼저 집중하라고 하는데 이는 나를 제삼자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감정에 빠지지 말고 나에게서 벗어나 더 큰 나를 나로 의식하며 나를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전직 방송인 김상운 씨의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에는 이러한 사례가 나옵니다.
한 여인이 심한 두통으로 직장까지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의사들의 처방은 진통제와 수면제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복용량은 갈수록 증가했고 그렇게 삶을 더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분이 이것을 치유한 것은 약물이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찾아가 만난 한 의사는 약물 대신 명상을 시켰습니다.  
 
“눈을 감으시고 머리 안에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고통 덩어리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머리는 그것으로 가득 차서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나의 머리가 1m로 커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다음은 10m, 다음은 이 도시만큼, 우리나라, 더 나아가 지구와 온 우주 크기만큼 커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명상을 매일 조금씩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한 달 뒤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결국 불교의 명상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 것에 영향을 받는 나 자신을 아주 작게 만들거나 없게 만들기 위해 진짜 나를 우주의 크기만큼 확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명상에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눈을 뜨면 다시 자아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그리 지속적일 수 없습니다. 다시 나로 살면 욕심이 생겨나고 욕망이 올라옵니다.
이는 ‘나’로부터 나오는데 나를 아무리 의식적으로 온 우주만큼 확장하려 해도 결국 이 세상에서 살려면 나라는 정체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체성이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기도도 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는 나 스스로 커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지려는 노력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 앞에서 작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대신 부모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닥치는 것들을 제삼자, 곧 부모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가 이와 같습니다.
은총과 진리로 작아져 하느님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은 온 우주보다 큰 분이십니다.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16년 전 방송출연하였던 아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란 사연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혼자 아들을 키웠는데 그 아들마저도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감사하며 사는 내용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새로운 눈을 주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처지에 감사해합니다. 
 
이를 위해 아들은 먼저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보아야 하며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 은총과 진리가 아들에게 새로운 눈을 줍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키우며 고생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오래된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 존재도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불우한 환경과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그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대건이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대신 세상을 아버지 눈으로 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이는 마치 탈출기에서 파라오가 속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 성막 안에 하느님을 품고 하느님의 눈으로 자신들의 처지와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치 밀떡으로 부서져서 그 안에 하느님을 담은 성체와 같습니다.
비록 가장 작은 모습이지만, 온 우주보다 큰 분을 담고 계십니다.
그렇게 나는 영향을 받지 않고 내 안의 참 주인이신 분의 감정에만 집중하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고통에서 탈출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만드는 기도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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