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형제님이 있습니다. 다른 교통수단은 괜찮은데 유독 비행기 탈 때만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비행 기간 내내 극심한 불안을 호소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갈 일이 있을 때, 배로 갈까도 심각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행 공포로 인해 해외 나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주변에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이 공포증을 없앨 수 있는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이 말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을 확률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을 확률보다 낮아.”
친구의 이 말을 들은 이 형제는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제 비행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아쉽게도 아니었습니다. 비행공포증은 그대로 있고, 여기에 화장실 공포증까지 생겼습니다. 화장실 가는 일이 하늘을 나는 일만큼 무시무시해진 것입니다.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만드는 법입니다. 따라서 불안을 멈추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비행공포증을 없애는 방법으로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심호흡과 복식호흡, 그리고 사람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안하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본인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당신께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것은 모든 불안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잘하지 못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수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할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나를 통해 세상에 퍼져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어떤 마음에 떨어져야 할 것인지를 보라는 것이지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깨닫지 못하는 길에 뿌려진 씨,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않는 돌밭에 뿌려진 씨,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숨을 막아 버리는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 이런 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씨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 부족한 자신을 노력으로 계속 변화시키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십니다.
걱정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 뜻에 맞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안에서도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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