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0,20-28
예수님께서 우리 열정에 기름 부으시는 방법
오늘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야고보는 동생 요한과 함께 열정이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마지막 날에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하시자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실 잔은 십자가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이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자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목사님들에게 어느 교회에서 사목하시느냐고 물으면 그분들은 항상 “어느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조원동 주임 신부입니다”,
혹은 “조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목합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이런 면에서 그분들 앞에서는 조금 부끄럽습니다.
저희도 섬긴다는 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야고보 사도의 열정을 나무라시지 않으신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높은 자리에 오르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합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처럼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1코린 9,24)
며칠 전에 직장에서 회장님에게 선교해서 세례를 주고 사장님에게 선교해서 오랜 냉담을 풀고
견진성사를 받게 한 신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아랫사람을 선교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윗분들을 이렇게 선교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분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정으로 신앙생활 하시는 분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열심히 하지만, 또 어느 정도가 되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저의 딜레마는 저를 포함해서 어떻게 열심한 사람들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들지였습니다.
저는 경쟁을 싫어하기에 상을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꾸르실료를 할 때도 울뜨레야를 잘한 본당은 일 년에 한 번씩 상을 주었는데 받지 못한 본당들이 움츠러들까 봐 오히려 마음으로는 그러한 정책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또한 그러지 않고는 열심한 분들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 사도의 열정을 꺾지 않으십니다.
요한은 자신을 나타낼 때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 옆자리에서 첫째였습니다.
예수님 가슴에 머리를 기댈 정도였습니다.
상을 주어서 열정을 더 끌어올리는 것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시험에 떨어진 것은 운전면허시험이었습니다. 대학생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 시간 공부하고 붙었다고 하기에 저도 그 정도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사흘은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시험장에 들어가 답안지를 받으니 너무 쉬웠습니다.
그때 제가 제일 먼저 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중에 점수를 확인하는데, 제가 97번이었는데
76점으로 나온 것입니다.
1종 보통이었기 때문에 80점이어야 합격이었습니다.
저는 크게 실의에 빠져서 그날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에는 잘 보겠다는 마음으로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시험장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올 정도로 끝까지 풀었습니다.
저는 만점 받았는지 알았습니다.
82점인가 84점으로 간신히 통과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00점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80점 통과를 목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80점이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100점을 목표로 삼고 공부하였습니다.
누가 붙을 가능성이 크겠습니까? 목표를 100점에 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6-27)
저도 목표를 크게 잡습니다.
우리 목표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도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첫째가 되려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분명히 더 겸손한 사람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를 더 높게 가집시다.
성인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성모님 옆자리를 노립시다.
목표가 생기면 삶이 바뀝니다.
어떤 분들은 하늘에도 높고 낮음,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처음 듣는다고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도 요한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늘 나라에 간다고 해서 내가 성모님과 동급의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
한 만큼 받는 것이 정의입니다.
이 사실이 잊힐 때는 대부분 신앙인이 자신이 느끼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면 거기서 노력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도 첫째가 있고 그 방법은
가장 겸손해지는 것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 하지 말고 위대한 성인이 되기 위해 신앙생활 합시다.
그러면 적어도 천국엔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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