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인간적이고 인본적이며 사람을 살리기 위한 안식일 규정!
바야흐로 여름 신앙학교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하루 온 종일 캠프 오는 청소년들의 안전을 위해 뙤약볕 아래서 콘크리트 작업을 했습니다.
모래와 시멘트, 물을 적절히 배합해서 콘크리트를 만든 후 채워 넣는 일인데, 무게가 만만치 않아
허리가 휠 지경이었습니다.
몇 시간 일하고 나니 하늘이 노란 게, 거품 물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러다 쓰러지지 하면서, 수시로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틈만 나면 물을 마시고, 목에다 들이부었습니다.
일과 휴식의 적절한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했습니다.
더불어 삼복더위에 냉난방 설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체감온도가 6~70도 까지 올라가는 철판 위에서 작업하시는 분들,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까, 걱정됩니다.
유다인들이 목숨처럼 중요시여기던 안식일법 규정, 그 근본 취지는 참으로 합리적이면서도 상식적인 것, 인간적이고도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강요되고 있던 안식일법 규정은 참으로 모순되고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목숨처럼 중요시 여기던 안식일 규정을 통쾌하게 파기하십니다.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내는 동시에, 지친 우리 인간과 동물과 땅과 자연에게도 휴식 시간을 부여하는, 참으로 유익한 안식일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안식일법 규정을 제정한 취지는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주간 내내 열심히 일했으니 주말에는 편안히 휴식을 취하자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규정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도 바치고, 오붓한 시간도 보내고, 책도 좀 읽고, 맛있는 것도 해먹고...
그런데 안식일 관련 세부 규정이 하나하나 추가되면서 정말이지 ‘웃픈’ 규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제정된 안식일 규정이 인간을 못살게 굴고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규정이 되고 만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 사건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부분을 서술함에 있어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루카 복음사가와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품위를 살려주기 위해서인지 예수님께서 불편 없이 지나가실 길을 내기 위해서 밀 이삭을 뜯었다고 기록합니다.
어쨌든 밀 이삭을 자르는 행위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 39가지에 해당됩니다.
일종의 추수 행위로 간주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바리사이들의 특징인 지나친 확대해석,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행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차하면 고발할 건수 하나 잡기 위해 예수님과 제자들의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커다란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바리사이들의 옹색함과 완고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없이 관대하고 너그러운 예수님의 모습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은 어떠합니까?
이웃들, 특히 매일 매 순간 함께 지내는 이웃들을 향한 시선, 나와 생각과 의견, 사상과 지향점이 다른 이웃들을 향한 시선이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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