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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7일_전삼용 요셉 신부님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6-17 조회수 : 519

루카 2,41-51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사랑을 사랑이 되게 하는 받아들임 
 
 
영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혈육 하나 없이 일생을 고독하게 살아온 노인이 양로원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평생 가꿔온 호화주택을 내놓았습니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순식간에 10만 파운드까지 집값이 치솟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집값은 올라가고 찾는 사람도 많았지만 노인은 허전한 마음에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단돈 1만 파운드만을 들고 집을 사기 위해 노인을 찾았습니다.
“만약 이 집을 저에게 파신다면 어르신은 영원히 이 집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함께 차도 마시고 신문도 읽으며 제가 말벗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결국 노인은 그 집을 젊은이에게 기쁜 마음으로 팔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집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 영혼을 상징합니다.
아무도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고독이고, 또 내가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고독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계란 상대 안으로 내 존재를 선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내어줌’과 ‘받아들임’으로 모든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한 자신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관계 단절이고 고독이고 죽음이었습니다. 
 
전에 헨델이 가발을 찾아준 여인에게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악보를 선물하였지만 그 여인은 그 악보를 그저 머리 마는 것에 사용해버려 헨델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었음을 말씀드렸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아무리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해도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사랑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성모 성심 기념일은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에 ‘짝’으로 따라옵니다.
예수 성심은 한 영혼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바치실 정도로 사랑하시는 마음이라면, 성모성심은 그 예수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양 99마리를 남겨놓고 그 1마리를 찾아왔는데도 끊임없이 목자의 마음을 몰라준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받아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모 성심 기념일은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에 ‘짝(커플)’로서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짝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짝이 자유로이 자신을 받아주는 이라야 내 안의 고독은 사라지게 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카사노바처럼 산다면 외롭지 않을까요? 가장 외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 안주해야 할지 찾지 못한 떠돌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갈비뼈를 찾아 나섭니다. 
왜냐하면 그 비어있는 갈비뼈가 채워지지 않으면
영원히 허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또한 남자의 옆구리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안주하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허전함과 불안함, 고독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고 마음 속으로 깊이 새겼던 성모 성심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986년 여름, 흑해에서 배 두 척이 충돌해 많은 생명을 앗아간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참사의 원인은 전파탐지기의 고장이나 짙은 안개가 아니고 인간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양쪽 선장은 앞에서 배가 접근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충돌을 피해 배의 진로를 바꿀 수 있었지만 서로 자존심을 내세워 양보하지 않았고,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강하면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렇게 모든 관계는 끝나고 맙니다. 
 
자존심은 자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고 하십니다. 
즉 요셉을 당신 앞에 놓으십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자존심 상해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존심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자아를 죽인 분입니다. 이것이 깨끗함이고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본질적으로 교만한 자아를 죽였다는 뜻인데 그 의미는 자아가 차지하고 있던 나의 공간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비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없어 화를 내거나 없었던 일로 잊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셨던 것입니다. 
 
사랑엔 자존심이 없습니다. 성모 성심을 본받는다는 의미는 아주 단순하게는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다는 뜻인 것입니다. 
 
성모님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사랑으로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성모님의 모든 것을 버린 ‘아멘!’,
이것이 사랑이 사랑이 되고 하는 순결한 성모 성심인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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