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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6-16 조회수 : 331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손을 앞으로 뻗어서 자기에게 다가올 위험을 손의 감각으로 막으려 합니다. 하지만 계속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뒤,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평상시에 보던 것처럼 잘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실로암에서 행하셨던 기적을 떠올려 보십시오(요한 9장). 그곳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눈이 멀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명령을 충실히 따른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복음은 증언합니다.

선천적 백내장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수술해서 드디어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앞을 완전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형태만 보였습니다.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공간 능력 파악을 위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대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씩 보이는 수준을 뛰어넘는, 즉 시간을 뛰어넘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엄청난 힘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힘센 분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랑을 더 많이 주실까를 고민하십니다.

문제는 늘 우리였습니다. 세상의 관점을 뛰어넘는 분이신데, 우리는 그분을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려고 했습니다. 엄청난 분인데도 자기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도 하찮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사랑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힘센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말씀에 큰 희망을 갖고 주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신 것은 그분의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며, 그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무한하신 그분의 사랑입니다. 진짜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정녕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주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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