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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6-06 조회수 : 497

마르코 12,13-17 
 
미래의 유토피아는 없다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역,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한 지 6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음악을 들었고 43분 동안 일곱 명이 청년의 바이올린 연주를 1분 남짓 지켜보았습니다.
스물일곱 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고 그렇게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였습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던 청년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날 350만 달러(한화가치 30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43분 동안 멋진 연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오가던 1,070명은 단 1초도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이 공연을 제안한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인이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꼬집고 싶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신자분과 대화 중 유토피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언젠가 건설될 하느님 나라. 그것이 유토피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고 결국 주님이 오실 때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대탕녀 바빌론처럼 영원한 바다의 심연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많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제1독서에서 마지막 날에 이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2베드 3,12) 
 
그렇다면 미래에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사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이들은 지금의 행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즘 선거철이라 그런지 운전하다보면 여러 후보자들의 공약이 걸린 현수막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자주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미래의 유토피아 이야기를 하는 공약들이 많습니다.
이런 공약들이 먹히는 이유는 우리는 여전히 현재의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리키는 곳만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유토피아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지금 당장 기도하고 묵상하고 주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하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동전 하나를 가져와보라고 하십니다.
그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돈에 집착하느냐고 하시며 황제에게 줘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나 집중하자고 하십니다. 
 
하지만 돈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돈이 참 행복을 가져다줄 현실적인 대안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복은 여전히 미래에 돈을 충분히 벌게 되었을 그 때에 있습니다.
우리가 뽑아주어야 할 지도자들은 ‘지금’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하느님 나라’를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순간 마음만 바꾸어먹으면 만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입니다.
돈과 상관이 없습니다.
미래에 건설될 눈에 보이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눈을 감으면 내 안에서 펼쳐집니다.
지금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그나마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대한 비전이 없으셨습니다.
노예제도를 그대로 인정하셨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에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선거에 나가셨다면 아무도 찍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만 당부하셨습니다. 
 
배부른 돼지를 만들어주겠다는 이들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부족한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심어주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줘 버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것인 우리 자신을 매일 주님의 것으로 봉헌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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