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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일_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6-02 조회수 : 579

마르코 11,11-25 

 

전례의 목적, 전례의 열매 

 

오늘 복음은 전례가 어떤 목적을 지향해야 하는지 밝혀줍니다.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예수님께서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장면이고 그 다음은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시는 장면이며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가 왜 뿌리째 말라 죽어야만 했는지를 설명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서술 방법을 대칭구조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이스라엘 성전 전례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돈을 좋아하게 될 때 본래의 전례 목적을 상실하게 되고 그러면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전례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렇게 밝히십니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특별히 용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게 해 달라고 청하면 반드시 용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마지막으로 심어주십니다.  

 

강도의 소굴이 된 전례는 서로 돈을 좋아하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온전한 전례가 이루어지는 성당은 서로 사랑하고 청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충만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1882년 프레드릭 카벤다쉬와 토마스 버크를 찔러 죽인 브라디라는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을 고발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용서를 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며 그를 설득하려했지만 그는 그것도 잘 알고 있고 자신도 죽어 마땅한 사람임도 알고 있지만 자신을 고발한 그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형 집행 전날, 한 수녀님이 그에게 면회 신청을 했습니다.

수녀는 그를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브라디씨, 저는 어떤 사람을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사실 나의 신앙으로도 그를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수녀에게도 그런 일이 있습니까?” 브라디의 눈빛이 빛났고 수녀는 조용히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를 용서해야 되겠다고 다짐하여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를 기회만 있으면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만 더해갑니다.

정말 어쩌면 좋겠습니까?” 

 

수녀는 정중하게 문의했고 브라디는 제법 대견하게 대답했습니다.

“안되지요. 용서하는 데는 까닭이 없지요. 그냥 마음을 풀어 버리면 되는 게 아닙니까?”

“그게 안 되니까 말이지요.그래서 신앙생활도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하고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천만에, 그러지 마시오. 용서할 수 있도록 좀 더 힘쓰셔야죠!” 

 

이때 수녀는 브라디의 손을 잡으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 했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뵈닉스 공원에서 버크를 죽인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나의 오빠입니다.” 

 

그러자 브라디는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 큰 눈을 한참 감고 있더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를 고발한 사람을 지금 용서합니다.

이제는 마음이 후련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앙의 평화를 체험하고 브라디는 조용히 숨을 거뒀던 것입니다 

 

사랑과 관련된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용서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아야만 줄 수 있는 것이 용서입니다.

내가 용서 받았다면 나도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기 싫고 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브라디가 수녀님을 만나서 용서를 하고 싶고 용서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처럼 전례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는 우리에게 이런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앞으로 아무도 없게 하겠다는 결심이 생겨야 전례에 온전히 참여한 것입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997년 7월 12일 파키스탄 북서부 스와트 지구의 밍고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두 형제와 자매 중 장남인 수니파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말랄라의 아버지인 지아우딘 유사프자이는 교육 활동가이자 학교 소유주로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장려하는 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말랄라의 삶에 영향력 있는 인물로 봉사하여 그녀에게 교육에 대한 사랑과 학습할 권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당시 여자는 교육 받을 권리가 없었습니다. 

 

지아우딘은 탈레반의 행동에 반대하며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공개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말랄라 자신의 행동주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8년 말랄라가 겨우 11살이었을 때 그녀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어떻게 탈레반이 교육에 대한 기본권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격려로 말랄라는 BBC에 익명의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여 소녀들의 학교 출석을 금지한 탈레반 치하의 삶을 설명했습니다. 

 

2012년 10월, 당시 15세였던 말랄라는 그녀의 행동주의와 유명세 때문에 탈레반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한 탈레반이 그녀의 학교 버스에 올라타 그녀의 이름을 묻고 그녀의 머리에 총을 쐈습니다.

그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파키스탄에서 초기 치료를 받은 후 치료를 위해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말랄라는 이 잔인한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그녀를 침묵시키는 대신 그녀의 삶에 대한 시도는 그녀의 결심을 강화했습니다.

회복 후 그녀는 전 세계 소녀 교육을 옹호하면서

더욱 활기차게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2014년 17세의 말랄라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맞서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한 공로로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평생 동안 말랄라와 그녀의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력과 지원은 그녀의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말하도록 격려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극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 사회의 문화적 규범에도 불구하고 지아우딘은 그의 딸을 세상을 바꿀 잠재력이 있는 개인으로 대했습니다.

그는 딸과 여자들의 인권 성장을 위해 자신의 딸부터 날개를 꺾지 않았고 그것이 한 나라의 교육제도를 변화시키는 큰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말랄라가 아버지를 만남으로써 불가능이 없다고 믿게 된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없다는 내가 죽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하느님과의 만남인 미사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우리 전례도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저주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가 세상 종말일 것입니다.

용서와 능력의 열매가 맺히는 전례가 되도록 힘씁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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