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10,46ㄴ-52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늘 갈망하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Stay hungry, stay foolish)”
우리가 잘 아는 애플 컴퓨터 설립자이고 2009년 포춘지 선정 최고의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췌장암과 싸우다 사망했습니다.
그가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사에서 “늘 갈망하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습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젊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습니다.” 라고 말했던 이 짧은 졸업사에서 우리는 그의 인생철학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원생 동거 커플인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의 아버지 압둘파타 존 잔달리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이를 대학에 꼭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다음 한 부모에게 입양시켰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 들어가 평범한 봉급자인 양부모님들의 재산이 자신을 위한 학비로 다 소진되는 것이 가슴 아프고 또 대학 교육이 그만한 가치를 주고 있지 못하다는 확신 하에 6개월 만에
자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강의만을 들으러 다닙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17살 때 읽었던 한 인용구 때문이었고 그것은 그가 죽는 날까지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나는 17살 때 다음과 같은 인용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루하루를 당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당신이 옳은 날이 올 것이다.
이 글에 감명을 받은 저는 그 이후로 지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나 자신에게 마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질문해 봅니다.
만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가?
그리고 ‘아니오’라는 질문이 계속된다면, 나는 다른 무엇인가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고의 거지 소경 바르티메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위 많은 이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죄인이 어디 자기의 목소리만 들어달라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소리지르냐는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멈추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가시던 걸음을 멈추십니다. 가시는 예수님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세상의 모든 눈초리와 힘을 이길 수 있는 ‘간절함’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들은 하루를 살더라도 마지막 날처럼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이런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듣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갑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젊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습니다.
내가 20살 때 우즈와 나는 부모님의 창고에서 애플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 만에 우리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2십억 달러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막 최고의 창작품인 매킨토시를 그 1년 전 출시했고 막 30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회사는 매우 유능하다는 경영자를 채용했고, 스티브 잡스와 의견이 맞지 않자 이사회가 그 경영자의 편에 서게 되어 자신의 전부였던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 회사인 넥스트, 또 토이스토리로 유명한 컴퓨텨 에니메이션 회사인 픽사를 설립합니다.
이 때 발전시킨 기술들이 나중에 애플이 넥스트를 합병할 때 연봉 1달러를 받고 다시 적자에 시달리는 애플의 CEO에 앉게 되었을 때 혁신 기술들을 내놓을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 해 7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던 애플을 곧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내는 회사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애플사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애플에서의 해고는 정말 지독한 맛이 나는 약이었지만 환자에게는 꼭 필요했던 약이었습니다.
때로는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벽돌로 후려치더라도 소신을 잃지 마십시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한 것이 나를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이 오늘 죽는다고 해도 변함없이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고 충고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죽을 수 있다는 이 절심함이야말로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덫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The Whole Earth Catalog란 책 맨 뒷면에 쓰여 있었던
“늘 갈망하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란 말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말 행복합니까?
예를 들어 술버릇이 나빠 술만 끊으면 좋아질 것 같은데 잘 못 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술을 마시면 쏘겠다고 한다면 계속 마실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그 ‘절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르티메오는 그냥 태어난 대로 살라고 하는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를 능히 이길 수 있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눈을 뜨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만이 그리스도께서 그 청을 들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영적인 눈을 뜬 사람이었고,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장님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 때문에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는 그의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형 둘은 대학을 못 갔습니다.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집에 대학 보낼 수 있는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희망은 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대 제대하고 하던 경영학이란 학문은 저에게 불쾌감만 줄 뿐이었습니다.
돈을 위해 사람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 왠지 비인간적이었고 돈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비참한 삶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기대, 특히 아버지의 기대는 약간이나마 저의 결정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생의 가장 잘 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학교를 자퇴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께서 매우 반대하셨지만 저는 제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입학했더니 생각했던 행복감은 오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또 모든 선배 신학생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이틀 동안 식당에 내려오기는 하되 밥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어떻게 그 많은 시선을 이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냥 저는 행복해지고 싶었고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사실 저의 의지가 강하니 아무도 제가 하는 것에 대해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다음 날 아침 성체모실 시간만 기다려졌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하고는 자리에 들어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느님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버리고 무언가 해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모든 것, 저의 생명까지도 다 그 분께서 주신 것이지 내 것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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