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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5-24 조회수 : 572

요한 17,11ㄷ-19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는 하나 됨 
 
 
교부 크리소스토모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리소스토모는 로마 황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맞섰습니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로마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크리소스토모를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감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하기를,
“황제님, 크리소스토모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황제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별 놈이냐? 빨리 집어넣어라!” 
 
“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기다 가두어 넣더라도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중얼중얼 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이야기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 두게 하면 그에게 좋은 일만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라!”
신하가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 “황제님, 그건 더욱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할 것이며, 얼마 있지 않아 그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크리스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무도한 악질죄인도 변화시켜 오히려 상급을 받게 해주는 일입니다.” 
 
황제가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면 그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당장!”
신하가 사색이 되어서 다시 말하기를, “아이구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처형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우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제일 좋은 것을 안겨주는 셈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아이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신다면서도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이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만 동시에 세상에는 속하지 않는 거룩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한 사람이 해안 지방을 지나는 중에 많은 갈매기들이 모래사장에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치우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가서
한 인부에게 갈매기들이 왜 죽었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인부가 대답하여 주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먹이를 던져 주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여러 가지를 맛있게 받아먹게 되지요. 
 
실은 이런 음식은 갈매기들에게 해로운 음식들이며 좋은 자연음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매기들이 그렇게 과자나 캔디나 받아먹다 보면, 좋은 자연 음식에 대한 식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그들에게 좋은 자연 음식 먹이가 바다 속에 그렇게 많지만 결국 갈매기들은 이처럼 굶어서 죽는 답니다.” 
 
갈매기는 본래 자연의 음식을 먹어야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너무 익숙해지다보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완전히 속해버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치는 그 안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사막에서 생활하다가 알렉산드리아 도시로 설교하러 다니셨는데 오래 버티시지 못하고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만약 물고기로만 살려면 사막에서만 살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토니오 성인은 도시로 자주 나가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삶인 것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일컬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며, 그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며, 맛을 내야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도 기도만 하는 자매에게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흡수되어 버리면 세상에 필요한 거룩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또한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도 그 세상 구원을 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 절대 서로 흡수되어 혼돈상태가 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될수록 그 분별은 더 커집니다.
아기들은 남녀 함께 벌거벗겨 놓아도 서로 창피함을 모르지만 다 큰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다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이 나를 여자로 만들어 주었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남자가 사랑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하나가 되지만 동시에 구별이 더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요즘 명상센터나 여러 종교의 가르침에서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 서로 분별이 없어지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즉 알고 보면 다 내 안의 신성이 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성당 다니시는 분도 제가 고맙다고 하면 “다 하느님이 하신 거지 제가 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는 내 안의 영과 성령을 혼동합니다. 
내 안의 영이 성령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간의 영과 하느님의 영을 엄연히 구분합니다.
다만 하느님의 영의 도움 없는 인간의 영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이 될 수는 있지만, 나와 하느님의 구별은 그만큼 더 명확해 져야하는 것입니다.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그 정확한 분별 안에서의 결합입니다.
즉 속해 있지만 속해있지 않은 결합인 것입니다. 
 
다 하느님이 하신 것이라면 내가 해서 칭찬 받거나 벌 받아야 할 책임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타볼산에서 변모하시며 이 세상 사람에 속하지 않음을 보여주십니다.
옷도 빛나고 모세와 엘리아와 함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모습은 이 세상 사람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곳에 머물려는 제자들을 데리고 이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바로 마귀를 쫓아내 주십니다. 당신이 거룩해지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어떤 거룩함도 줄 수 없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아들 안에 사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드님이 아버지께로 가시기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고 둘이지만 둘이 아닌 상태, 즉 속하지만 동시에 속하지 않는 본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세상에 대해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되지만 세상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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