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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5-18 조회수 : 577

요한 16,16-20 

 

세상이 비웃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께 가시지 않으면 성령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하시며 떠나는 것은 잠시지만

그 근심은 “조금 있으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 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이 근심할 때는 세상이 기뻐할 때이고 세상이 근심으로 바뀔 때 우리는 기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려는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살려고 결심했을 때 주시려는 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살려고 결심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의 도우심을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용서도 사랑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정원 씨가 유영철을 용서할 마음이 생긴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 때문이었고 그 마음을 채워주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물론 고정원 씨는 성령을 받는 시간인 기도 시간을 꼭 가졌습니다.

고정원 씨가 고통을 받을 때는 세상은 ‘그것 봐, 용서가 안 되지?’라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세상은 고통 속에 잠겼습니다.

유영철을 양자로 삼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정원 씨는 용서가 되는 신기함에 기뻐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믿음과 사랑이 희망 속에서 성장합니다.  

 

윌마 루돌프는 1940년 6월 23일 테네시 주 세인트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에서 22명의 자녀를 둔 가정에서 갓 1kg이 넘는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루돌프는 네 살 때 왼쪽 다리와 발이 마비된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가족에게 그녀가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가족은 매우 종교적이었고 그들의 신앙은 이 어려운 시기에 힘과 희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어머니는 기적과 기도의 힘을 믿었고 자신이 직접 집에서 정기적인 물리 치료를 하였습니다.

딸의 삶을 장애로 정의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그녀의 믿음에 대한 증거였으며, 그녀는 이러한 믿음을 윌마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의 믿음을 비웃던 의사들은 아홉 살 때 루돌프가 다리 보조기 없이 걷는 법을 배운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농구와 육상 경기에 대한 사랑을 키웠습니다.

그녀는 걸을 수도 없었지만,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루돌프는 엄청난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루돌프가 16세의 나이에 1956년 멜버른에서 열린 첫 올림픽에 출전하여 4x1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4년 후인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그녀는 100m, 200m, 4x100m 계주에서 단일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 되었습니다. 

 

트랙에서 은퇴한 후 루돌프는 교사와 코치가 되었고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여성들의 인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플랫폼을 사용하여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믿음을 공유하고

그들도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음으로 무언가 하려면 비웃습니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참아내게 합니다. 

사랑은 믿음을 낳고 그 믿음은 인내를 낳습니다.

그 인내 뒤에 반드시 기쁨이 온다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그도 믿음으로 세상의 비웃음과 맞서 결국 기쁨을 쟁취한 인물입니다.  

 

1940년 6월 28일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구 도시에서 태어난 무하마드 유누스는 사회적 기업가, 경제학자, 시민사회 지도자로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고 소액 신용대출 개념을 개척한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유누스는 가족 중 아홉 자녀 중 세 번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한 금세공인으로 항상 아들들에게 고등 교육을 받도록 격려했습니다.

유누스는 방글라데시 다카 대학교에 다녔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방글라데시 해방전쟁이 끝난 1972년 유누스는 치타공대학교 경제학과장이 됐습니다.

1974년 방글라데시의 기근은 유누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유누스는 경제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고 경제 이론이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울 방법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유누스는 학교를 나와 가난한 사람들과 머무는 실험을 계속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력거를 17,000원에 비싼 이자로 빌려 허덕이는 삶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실험을 합니다.

그의 첫 번째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요브라 마을에서 대나무 가구 만드는 42명의 여성에게 주머니에서 총 27달러를 빌려준 것입니다. 

 

이 소액 대출을 통해 원자재를 구입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비웃었습니다.

아무도 안 갚을 것이라고. 그러나 돈의 회수율은 98%였습니다. 세상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실험의 성공에 힘입어 유누스는 1983년에 Grameen Bank(Village Bank)를 설립했습니다.

이 은행은 상호 신뢰, 책임, 참여 및 창의성에 기반을 둔 은행 시스템인 신뢰와 연대의 원칙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그라민 은행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거나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액 대출로 알려진 소액 대출을 제공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라민 은행은 크게 성장했으며 전 세계의 다른 소액 대출 기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2021년 9월을 기준으로 그라민 은행은 2,600개 이상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의 81,000개 이상의 마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금은 수조 원대로 늘었고 상환율은 90% 이상입니다.  

 

소액 금융 분야에서 유누스의 업적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2006년에 그와 그라민 은행은

“아래로부터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으로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세상의 비웃음을 오히려 비웃으며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비웃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고 세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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