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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5-15 조회수 : 469

사도행전 16,11-15

요한 15,26─16,4ㄱ 

 

주님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확신은 '마음의 든든함'이다 

 

 

지난 월요일에 평화방송 녹화 중 사회자의 좋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에 대한 질문인데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왜 떠나신 것일까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입니다. 

 

그러나 만약 주님께서 계속 함께 계시며 당신만을 바라보라고 강요하시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가능할까요? 

 

참사랑은 자신의 존재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레나 마리아는 두 팔이 없고 한 다리는 30cm밖에 안 되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물론 장애인 올림픽에서 많은 금메달을 따고 음악과 그림 등에 소질이 있으며 인기 도서 작가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레나 마리아의 어머니는 마리아를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아 일반 학교에 다니게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침울하게 돌아오자 엄마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엄마, 난 친구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친구가 없어. 예수님이 네 안에 계시잖아!” 

 

레나 마리아는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늘은 더는 수업을 할 수가 없겠다. 노래는 마음에서 나오는데, 너는 너무 슬퍼. 그러면서 어떻게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니?”라고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엎어져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유일하게 전화기를 잡을 수 있는 다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레나 마리아시죠?”

“네...”

“예,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레나 마리아를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주라고 하셨어요!” 

 

레나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나약한 저의 육신과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제 입술을 당당히 보여주겠습니다.” 

 

TV에서 보았던 어떤 실험에서 아기가 엄마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 안에 아기가 좋아할 장난감들을 넣어놓고 아기를 놀게 하였습니다.

조금 후 슬며시 엄마가 밖으로 나가봅니다.  

 

한참을 놀다 엄마가 함께 없다는 것을 알게된 아기는 장난감에는 관심이 없고 울며 엄마만 찾았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이젠 엄마에겐 관심이 없고 장난감으로 놀기에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엄마를 눈으로 보는 것이 엄마의 존재에 대한 더 큰 확신일까요,

아니면 엄마가 보이지는 않지만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이 더 큰 확신일까요? 

 

사람은 세 단계로 어떤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확신은 속을 확률이 높습니다.

마귀들도 예수님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곧이곧대로 믿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다음은 머리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신학을 부지런히 공부하여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사도들을 박해할 이들은 머리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었습니다.

머리로 알고 믿어서는 아직 구원의 수준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을 증언할 영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서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박해받아 죽어가면서도 찬송가를 불렀던 순교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러한 순간에도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주님을 확신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주님 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기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의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마음의 평화라고도 할 수 있겠고, 든든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성령의 위안이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주님 존재에 대한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령을 주시기 위해 아버지께 올라가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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