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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5-04 조회수 : 599

<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는 것이다.>
복음: 요한 13,16-20 
 
파견(소명)과 행복과 계시 
 
 
헨리 나우엔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톨릭 영성가입니다.
많은 책을 썼고 예수회 신부로서 예일대학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교수로서의 소명을 살아가던 도중, 그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열망으로 페루 빈민가 사목을 하기 위해 떠납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요청이 들어와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때 또 다른 하느님의 부르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즉 프랑스 한 장애인 공동체에서 피정에 참여해 달라는 편지가 온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강사로 초빙된 줄 알고 갔으나 알고 보니 대침묵 피정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장애인들을 돌보며 지낸 시간은 그의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단체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교수님이 함께 있어서 축복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이런 우리 같은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커다란 하느님의
선물일까요.” 
 
하버드대학으로부터 이제 막 교수가 되어 일을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갈등하기 시작하였지만 결국 그 부르심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캐나다 토론토
근처에 있는 ‘데이브레이크 커뮤니티(Day 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 새 공동체의 지도자로 가게 됩니다. 
 
공동체 식구는 6명,
그는 그 6명을 위해 하버드대학교 교수자리를 물리치고 그 공동체를 선택했고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그 공동체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대학교에서 선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까요?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씁니다.
“이상하다. 이것은 희생이고 이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뒤엎는 나의 새로운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가! 이상한 마음의 평화가...  이 놀라운 평화여, 자유여, 자유여.” 
 
그리고 그는 그 정신지체아들로부터 자신이 치유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우리는 헨리 나우엔 신부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학에서 강의했다면 더 큰 일을 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신부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판단할 때, 자신 안에 느껴지는 ‘평화와 자유’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행복’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내 자신의 성소가 무엇인지 헛갈릴 때, 그 판단 기준으로 내 마음의 평화와 자유, 행복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외적인 성취가 아닌 마음의 행복을 기준으로 성소를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은 그 이유로 그것을 존재하게 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막에서 시계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막 같은 이 세상에 시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더 복잡하고 더 유용한 우리 각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힘든 삶과 상처, 청소년기의 방황을 극복하고 미국을 들었다 놨다 한 인물이 되었던
오프라 윈프리는 그의 마지막 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지세요.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이유, 소명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만이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내가 가장 완전하게 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그것이 나의 존재이유이고 소명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그 소명이 헛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판단의 기준을 항상 ‘마음의 평화, 자유, 행복함’에 두십시오. 
 
나를 만드신 분이 나의 길을 가장 잘 아실 텐데 그 길을 가면 반드시 내가 더 행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자녀를 낳았을 때 그 자녀가 세상에서 사랑받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행복하도록 우리 모두를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그분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 종으로서 당신 부르심대로 살게 되면 결국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은 희생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복하게 못 박히셨고, 이태석 신부님도 마더 데레사도 당신들이 더 행복한 길을 찾은 것이었고 헨리 나우엔 신부님도 그러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새 성인이 되신 교황님도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행복한 분이 성소를 찾은 분이고 성인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신 이유는 참 행복을 찾는 방법을 세상에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도 참 행복을 찾기 위해 그 소명을 주신 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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