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3,16-20: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16절)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조용히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주님은 아버지의 선과 사랑을 지니신 분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시면서도 우리 모든 죄인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당신의 영을 주시어 당신과 같이 될 수 있게 해 주셨다. 우리는 아들의 영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17절) 이것은 우리가 아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사랑과 열정에 어울리는 것은 덕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우리의 지식이 실천으로 드러나게 될 때, 항상 생각지 못한 큰 결과를 얻게 된다. 실천이 없으면 지식도 심각한 불구가 된다. 믿음은 하느님에 관한 지식과 하느님께 대한 고백을 모두 포함하지만, 실천으로 나오는 빛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18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뽑은 이들을 아시고 발꿈치를 치켜든 자들을 아신다. 그렇다면 다 아시면서 유다는 왜 뽑으셨을까? 하느님은 아담이 죄를 지을 줄 아셨지만 그를 창조하셨고, 사울이 죄를 지을 줄 아셨지만 그를 기름 부어 왕으로 삼으셨다. 유다를 뽑으신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도 분명히 제자가 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선택이 그러했다. 아담과 하와처럼 말이다. 그는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아담도 하와도 사울도 유다도 하느님의 뜻이 아닌 것을 선택한 결과이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일이 일어날 때,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도록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을 따라온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해주시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20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이는 바로 파견된 사도들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이를 맞아들이는 이는 그 사람 안에서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것이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아버지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이를 맞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이 말씀은 파견된 이에게는 보내신 분의 권한이 부여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파견된 그리스도를 맞아들여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 그분을 보내신 분 아버지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사도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는다면, 사도들을 가르치신 분을 발견할 것이며, 우리가 아들 안에서 아버지를 찾는다면, 아들 안에서 그분을 낳으신 분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께 가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