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19-26 요한 10,22-30
오직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길이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마도 의식주의 충족이겠지요.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삶을 얼마나 궁핍하고 비참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의식주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나면, 자연스레 추구하게 되는 것이 놀이 문화요 축제 문화입니다.
바닷가에 살다보니 실감합니다.
뷰가 좋은 캠핑장은 사시사철 호황입니다.
강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캠핑을 하길래, 살짝 봤더니, 텐트며 캠핑 도구들이 최첨단이었습니다.
얼마나 춥고 불편할까 걱정했었는데, 세상 따뜻하고 편안한 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놀이 문화나 축제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기념비가 될만한 큰 사건들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념하고, 경축하면서 부단히 현재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축제가 다른 이방인들의 축제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측면이 한 가지 있었으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풀어주신 자비와 용서, 축복과 구원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감사하며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전 봉헌 축제는 안티우쿠스에 의해 함락되고 파괴된 예루살렘을 유다 마카베오가 되찾은 후,
성전을 정화시키고 봉헌한 것을 기념하여 매년 겨울에 거행되었습니다.
이 축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승리의 날을 경축하고 기렸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도 이 축제에 참석하셨습니다.
성전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마치 하이에나 떼처럼 예수님 주변을 맴돌고 있던 유다인들이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요한복음 10장 24절)
유다인들의 어투를 참작할 때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손톱만큼의 호의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던가 확신하며 던진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강한 적개심과 증오심으로 무장한 채, 빈정거리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유다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자극해서 빌미 잡힐 말을 하게 만들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이없는 말만 골라 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슬픈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복음 10장 25~27절)
그간 예수님께서 행하신 설교 말씀을 귀담아들었더라면, 그분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유심히 바라봤더라면 유치원생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메시아성을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예수님 주변을 맴돌면서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유다인들은 유치원생보다 못한 존재들이군요.
오늘 다시 한번 알아들을 귀를 청합니다.
들은 바를 잘 실천할 힘도 덧붙여 청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유일무이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오직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길이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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