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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4-29 조회수 : 479

요한 6,60ㄴ-69 

 

회개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특징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거북하여 그분을 다 떠나갑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도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분 곁에 머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도대체 유다인들은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고도 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요?

또 사도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이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바오로 사도는 영적인 사람을 내적인 인간이라 하고 육적인 사람을 외적인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인간은 영혼을 살리려는 사람이고 육적인 인간은 육체를 살리려는 사람입니다.

관심사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살리려고 하면 다른 하나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 

 

그리고 영적인 인간과 육적인 인간이 나뉘게 되는 방식은 아버지의 이끄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 아버지를 상징합니다.

그의 아들 이사악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에 합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은 당신 종을 보내십니다.

그 종들을 통해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이 된 이들을 아버지는 아드님과의 결합으로 초대하십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자신의 종을 시켜 레베카를 이사악에게 인도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이미 영적인 인간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이 되는 순간을 ‘회개’라고 합니다. 

육적인 인간은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합니다.

삼구는 우리 육체를 살리기 위한 생존욕구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욕구가 사랑의 욕구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살리는 욕구인데 이것을 위해서는 나의 육체가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랑은 나의 생명을 내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삼구가 아닌 십자가 사랑이 행복임을 알게 된 이들의 특징은 이제 하느님의 말씀이 맛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내적인 인간인 영혼에 생명을 주는 양식이 됩니다.

그러니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로마 7,22) 구약에서는 에제키엘이

말씀을 받아먹는데 입에 꿀처럼 달다고 말합니다(에제 3,3). 

 

또한 요한 묵시록에서도 “그래서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요한 10,10)라고 나옵니다.

두루마리는 하느님 말씀이고 영적 인간은 그 말씀을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즐깁니다.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미국의 정치인이자 변호사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며 자기 능력을 철저히 믿고 승리만 거듭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에 의한 그의 평가는 잔인한 숙청자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 하는 불법은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런데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콜슨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에서 증언해야 했으며, 사건과 관련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1974년, 콜슨은 방해 공작과 폭로된 정보를 이용한 국가 기밀 유출에 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굳세게 믿어왔던 그에게 이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이때 그의 한 친구가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만 믿던 그가 비로소 말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입니다.

콜슨은 이 책을 읽고 신앙은 받아들였으며 그의 장례식에서 딸이 증언하듯이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콜슨은 석방된 후, 복지와 교정 시스템에 대한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교화시키는 것을 그의 가장 중요한 소명으로 삼았습니다.

1976년 ‘프리즌 펠로우십’라는 이름의 기관을 만들어 수감자들의 교화에 힘을 썼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만나고 부시 대통령에서 영예로운 상도 받는 등의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믿을 때는 보이지 않던 성경 말씀을 “들고 읽어라!”라고 하는 목소리에 읽게 되었고 그렇게 삶이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회개 한 사람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싶어서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주는 말씀들을 마치 입에 단 꿀처럼 흡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흥미롭지 않은 이유는 아직 회개하지 않고 육적인 인간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거북한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성체를 영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육적인 인간은 하느님이 살 영혼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내가 회개했는지 아닌지는 주님께 대한 지식을 갈구하는지 아닌지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말을 맛있어하지 않는다면 당신께 회개한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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