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44-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보이지 않는 손
오늘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어 함께 나누고자합니다.
이 자매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자매이고 세례 받은 지도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자매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말도 아주 천천히 하고 남들처럼 빨리 걷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믿음이 조금 생긴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 즉, 전에 남편이 이혼하자고 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이혼하자고 한 이유는 남편이 경제적인 이유로 살림을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이 자매는 이혼하기가 싫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묵주기도 5단씩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말이 느리기 때문에 5단 바치는데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 좋은 일만 벌어지더랍니다.
접시를 닦다가 떨어뜨려서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하였고, 수영장을 다니는데 잡고 있던 매트를 놓쳐서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났고,
또 한 번은 수영장 버스가 이 자매의 장애를 생각하지 않고 내리지도 않았는데 출발하여 길에 떨어져 크게 다칠 뻔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도 ‘기도를 드리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만 겹치는가?’하며 의아해 하는데, 그 자매가 이렇게
어려운 일들을 겪는 것을 보고는 남편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 자매를 떠나면 이 자매 혼자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으니 자신이 옆에 있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열심히 함께 잘 살아보자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성모님께서 이렇게 힘겨운 사건들을 통해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구나!’ 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사람들이고 아버지께서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께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즉, 간추리면,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믿음에 도달하는데, 그 이끄심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에 이끌려 그리스도께 오게 된 것입니다.
위 자매도 처음엔 그 어려움들이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음을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손이 자신을 믿음에로 이끌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보이지 않는 손을 보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는 아퀼라와 브리스킬라의 이름을 지닌 부부가 나옵니다.
전승에 의하면 독수리라는 뜻의 이름인 아퀼라는 유다인이었고 브리스킬라는 로마 귀족 출신의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브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에게 중대한 인생의 시련이 닥칩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정치적 이유에서 유다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브리스킬라는 로마에서 시민권을 상실하고 남편과 함께 외국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코린토로 건너갔습니다.
브리스킬라 부부의 직업은 장막 제조업이었습니다.
그들은 코린토로 이주한 후에도 여전히 장막 제조를 하면서 생활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퀼라 부부는 사도 바오로와 우연하게 첫 만남을 갖습니다.
“안녕하시오? 나는 바오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천막을 만드는 기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같이 일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브리스킬라 부부에게 마침내 새로운 인생의 장이 펼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테네에서 전교 결과가 여의치 않아 풀이 죽어 코린토로 돌아온 사도 바오로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퀼라와 브리스킬라 부부의 집에 머무르면서 함께 살면서 일을 같이 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들 부부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퀼라와 브리스킬라를 바오로에게, 또 바오로를 그 부부에게 인도한 것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였습니다.
로마 황제의 추방령, 혹은 바오로가 천막 만드는 기술을 가진 것을 통해 그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우연히 만났다고 생각하면 믿음이 없는 것이고, 하느님이 만나게 해 주셨다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고 항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 있는
필연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혹은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이들 안에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혹은 내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 교회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고 크게 부서졌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조각상은 두 손만이 떨어져 나간 채 보전되어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이 조각상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이전보다 더 큰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느 날 한 조각가가 그리스도상을 보고 손을 만들어 붙이자고 사목회에 건의했는데, 그날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없어진 손을 다시 만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도 하느님의 손길로 그리스도께 인도되었다면, 우리도 그 보답으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드려야 합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는 것이 곧 그분의 일부분, 즉 신성, 곧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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