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6,22-29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다!
오늘 제게 있어 썩어 없어질 양식은 무엇이며,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베트남의 성자 구엔 반 투안 추기경께서는 아무런 죄도 없이 견뎌내야 했던 오랜 독방생활 중에,
철저한 고독, 치열한 자기 극복의 과정, 열렬한 기도 끝에 그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식별력을 얻었습니다.
그는 한치 눈앞의 것에만 몰두하지,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에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원이라는 상표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것이든 가짜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들이 지닌 공통된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외양이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실상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성,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성찰 없는 성공이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겸손이 사라진 권위가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양심과 지성이 결여된 명예가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정직과 나눔이 없는 부가 썩어없어질 양식입니다.
참된 부와 그릇된 부, 진품과 명품, 영원한 보화와 짝퉁을 구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치유활동을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되었습니다.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참 메시아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킬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꿈을 성취시켜줄 정치적 메시아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집요하게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했지만, 결코 존경과 신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가끔 예수님께서 자취를 감출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목숨 걸고
집요하게 그분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렵사리 예수님을 발견한 그들이 질문을 던집니다.
“저희를 몰래 따돌리고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니까?”
그들의 속셈과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의미 없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십니다.
“허황된 꿈들은 빨리 깰수록 좋단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란다. 이 세상 것만 기를 쓰고 추구하지 말아라.
감추어진 세계, 보다 가치있고 차원 높은 세계는 어찌 보지 못하느냐?”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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