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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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들은 눈앞의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일차적으로 두려움이 생겼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근육을 움직였습니다. 즉,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했습니다. 두려움이 생길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 뇌의 편도체입니다. 이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심각하게 저하된다고 하지요. 원시 사회에서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 최약체였습니다. 힘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하늘을 날거나 물속을 헤엄칠 수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능을 사용할 때 활성화되는 전전두피질의 기능의 발달이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 볼 때,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긴장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만 지능을 사용하는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는 지능의 활성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긴장되는 순간에서도 편도체를 안정화하고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할 수 있어야 올바른 판단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편도체를 안정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많은 심리학자는 명상을 이야기합니다. 눈을 감고 마음의 평화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기도, 묵상과 다를까요?
기도, 묵상을 통해 우리는 더 큰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기도와 묵상을 소홀히 할까요?
편도체의 활성화가 계속되는 원시인이 아닌,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는 현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많아져서 우리 뇌의 편도체가 계속 활성화되는 원시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또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현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이 아드님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굳게 믿는 이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길이 아니라 영원한 벌이 머무는 길을 선택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굳은 믿음보다 세상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보면, 성령과 하나 된 사도들이 힘차게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말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격분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어서 나온 모습입니다. 당연히 영원한 생명보다 영원한 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더 열심히 기도와 묵상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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