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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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휴스턴 대학은 의과대학에 지원한 학생 중에서 먼저 필기시험을 쳐서 우수한 학생을 가려냈습니다. 그리고 필기시험 합격자 중에서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정했지요. 면접관들은 학업을 잘 감당하고 나중에 더 좋은 의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을 뽑았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착오가 있었습니다. 더 많은 인원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그보다 적은 인원을 뽑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면접에서 떨어뜨린 지원자 중 많은 학생을 합격시켜야 했습니다.
면접에서 떨어졌던 학생들은 나중에 실력이 부족한 의사가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학 생활에서도 성적의 차이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떨어졌던 학생 중에서 능력이 특출한 의사가 많이 배출된 것입니다. 면접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보다는 면접에 합격한 학생들은 면접에만 더 우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무조건 정답은 아닐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얼마나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쏟아졌습니까? 100% 맞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의견이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전문가들의 판단에 대한 진실 여부를 계산한 통계가 생각납니다. 겨우 54% 맞았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사람의 판단은 하느님이 아닌 이상 100% 맞을 수가 없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판단에 무조건 의지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판단에 의지할 수 있는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의 판단에 대해서는 굳은 믿음을 보이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해서는 불신의 마음을 보입니다. 제대로 살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사람의 판단만을 믿습니다. 즉, 세상의 관점을 통해서만 믿으려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전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엠마오로 가고 있던 두 제자가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알렸어도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세상의 판단만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은 세상의 판단을 뛰어넘는다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세상의 관점만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보고 철저하게 의지하는 제자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춘 사람은 주님의 이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1독서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의 말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19.20)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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