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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9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4-09 조회수 : 313

사도행전 10,34ㄱ.37ㄴ-43

콜로새 3,1-4

요한 20,1-9 

 

참 사랑이 충만한 이곳,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수요 핵심, 본질이요 전부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교리며 전례, 신학이나 전승 등 모든 것은, 예수님 부활이라는 정점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단 한보도 뒤로 물러설 수 없으며, 타협하거나 절충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 절대 가치요 핵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톨릭 교회의 전례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최고봉이요 정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활대축제보다 더 상위에 놓을 수 있는 축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8일 동안 부활 팔일 축제를 경축하며, 부활시기는 50일간이나 지속됩니다. 

 

좀더 강조되고 경축해야 할 축제가 예수님의 부활 축제입니다.

그분의 부활 빼놓는다면 우리 교회는 아무 것도 아닌 단체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부활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그분의 부활로 인해 모든 것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며 제 빛깔을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바오로 사도는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 코린토서 15장 14절)

결국 예수님의 부활 사건 자체가 복음이요 기쁜 소식 전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서 셀수도 없이 많은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그릇된 교리와 오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신앙교리성으로부터의 단죄와 처벌이 있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너무 과도하게 연구하고 고민하던 끝에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더욱 똘똘 뭉쳤습니다.

제자공동체는 매일 그분과 동고동락하면서 느끼고 체험했던 그분의 말씀, 그분의 행동,

그분의 몸짓을 상기했습니다.

결국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히 드러내는 특권적 상징임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스승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해냈고, 그러한 기억을 표현한 기록이 바로 성경 속 부활 이야기입니다.” 

 

신앙의 신비인 부활입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백번 천번 고민해도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런 부활을 자꾸 인간적 사고의 틀 안에 가둬놓고 설명하려고 기를 쓰다보면 생겨나는 것이, 이단이요 오류인 듯 합니다. 

 

결국 부활의 신비를 열수 있는 열쇠는 어린이 같은 단순성이요, 순수한 신앙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좀 더 깊어지면, 그분의 부활은 좀 더 우리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안치되었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으므로 더 이상 여기에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신과 의혹으로 가득한 이곳, 여기에 더 이상 주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거짓과 위선, 악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곳, 여기에 더 이상 주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참 사랑이 충만한 이곳,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풍요로운 사랑의 나눔 있는 이곳,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상호 존경과 헌신이 있는 이곳, 주님의 성령으로 가득한 이곳, 고통과 결핍 속에서도 기뻐하고 희망하는 이곳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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