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8,1-10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죽음을 딛고 되살아났다. 내 죽음으로 인해 죽음이 정복되었다!
작년 늦가을에 심었던 튤립이 피정 센터 곳곳에 마구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여쁘고 탐스러운 샛노란 꽃망울을 바라보며 주님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꽁꽁 언 땅에 묻을 때는 과연 긴 겨울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었습니다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사한 얼굴을 내미는 친구들에게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향기를 진하게 맡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부활 성야 미사 복음의 주제어는 두려움입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짧은 구절 안에 거듭 반복해서 두려움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무덤 경비자들의 두려움을 소개합니다.
갑작스러운 큰 지진과 함께 천사들이 등장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큰 돌을 옆으로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습니다.
경천동지할 광경에 무덤 경비자들은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던지 사시나무 떨듯이 떨다가 까무러쳤습니다.
기절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앞에 신앙 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이어서 소개되는 두려움은 무덤을 찾아온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느낀 두려움입니다.
안 그래도 그토록 사랑했던 스승님과의 사별과 단절로 인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천사가 열어놓은 무덤 안에 스승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자, 여자들이 느낀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입니다.
천사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 여자들을 이렇게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 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마태오 복음 28장 5~7절)
이 순간부터 여자들의 두려움은 기존의 두려움과 다른 양상을 지닙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의 두려움입니다.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
여자들의 두려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전력 질주하던 여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 꿈속에서도 그리웠던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완전히 돌아가셨던 분이 되살아나셨으니 여자들은 당연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 앞으로 다가가 엎드렸습니다.
그분의 발을 꼭 붙잡고 연신 절을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천사와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세상 자상하고 따뜻한 목소리, 바로 그분 목소리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그 말씀으로 인해 여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적대자들도, 세상의 박해도,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용감하고 담대한 복음 선포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다들 비슷할 것입니다.
쥐고 있는 것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노화와 병고에 대한 두려움.
사별과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내 인생이 이렇게 작아지고 쪼그라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런저런 다양한 두려움에 시달리며 슬퍼하는 우리를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건네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죽음을 딛고 되살아났다. 내 죽음으로 인해 죽음이 정복되었다.
더 이상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사다리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끝이 아니다.
이 세상 지나가면, 이 세상보다 몇천 배, 몇만 배 더 충만하고 아름다운 하느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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