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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3-31 조회수 : 506

요한 10,31-42

<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의미 

 

오늘 독서에서도 역시 예레미야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그에게 복수하려는 이유는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송사를 주님의 손에 맡겨드립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이런 처지를 ‘가난한 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를 해하려고 하는 이들을 ‘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실 때의 부자는 재산을 많이 가진 이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가 하느님나라를 차지하게 된다고 말할 때의 가난한 이도 돈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부와 가난은 그 사람이 가진 돈의 액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단어들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이는 ‘자아’와 연관됩니다. 

 

제가 신학생 때 이태리 신학생 두 명과 봉사활동을 함께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차도 못 만들고 기차도 없는 굉장히 못사는 나라처럼 저를 놀렸습니다.

그때는 이태리 말을 제대로 못할 때라 반박도 잘 못하며 기분만 나빠했습니다. 

 

저는 보복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가면 로마에서 공부한 것을 절대 떠들고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교구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제가 로마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에 질투가 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태리 신학생들 사이에서도 로마에서 공부하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치 로마에서 공부한 사실을 창피한 것처럼 여기는 말을 하자 그들도 흥분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의 제 마음이나 그들의 마음이 ‘부자’의 마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자아가 강한 사람입니다. 

자아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세상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돈을 좋아하면 그 사람은 ‘나는 부자다’라고 자기를 소개할 것입니다.

아니면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국회의원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자아의 확장’이라 부릅니다. 세상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여 그런 헛된 것들을 통해

자신을 들어 높이게 만드는 역할을 자아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동일시했던 무언가를 무시하면 자신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아 화를 내게 됩니다. 

 

사실 그들이 우리나라에 기차가 없다고 했다고 해서 화를 낼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기차가 없다고 해서 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또한 로마에서 공부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부와 명예를 자기 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아는 바로 이 세상 것들로 자신을 들어 높이려고 하는 뱀입니다. 

 

반면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자아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아가 죽었기 때문에 세상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주인으로 계셔서 자신이 참 성전이 되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이 가난한 사람이 눈의 가시처럼 여겨집니다.

돈을 업신여기면서 부자인 자신들까지 업신여기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을 업신여긴 것인데 돈과 자신이 동일하다고 여기기에 자신이 비난을 받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며 더 낮아지기만을 원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헛된 것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만약 “너 참 무식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난다면 그 사람은 부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지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너는 개 같다”라고 말할 때, “그럼 어때?”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예가 바로 마귀에 들린 딸을 치유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던 이방인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개에게 빵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예수님께 아무런 거부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아를 매달아 없앤 사람이기에 그리스도를 차지하고 그분이 주시는 은총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강하다”라고 하시며 가난한 이들 안에 참된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태초부터 뱀이 하느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만이 오로지 나의 주인이 되시게 하여 이 세상 어떤 것에도 우리 자신을 내어주어

동일시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해야만 하느님나라의 행복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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