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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3-27 조회수 : 510

다니엘 13,1-9.15-17.19-30.33-62    요한 8,1-11 

용서가 안 된다면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인 이유 

 

오늘 독서는 그 길고도 긴 수산나와 두 노인 이야기입니다.

두 노인이 다니엘 앞에 서기까지는 두 노인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은 수산나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나타나니까 자신들의 죄상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자신들이 수산나에게 덮어씌우려던 죄를 자신들이 다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두 노인에게는 다니엘이 원수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들의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드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분을 만나지 못하면 누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유명 피아니스트 블라디스와프 스필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 스필만이 수많은 친구의 희생으로 살아남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이 되어 총 한 방이면 죽게 되지만, 독일군 장교는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그를 살려주고 음식과 옷까지 챙겨줍니다.

독일군에게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한 독일군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그리고 그가 준 독일군 장교의 코트를 입고 다니다가 폴란드군에게 죽임을 당할 뻔도 합니다.

독일군 장교의 옷을 입었다는 말은 자기 가족과 친구를 죽인 독일을 용서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간음한 여자에게 던질 돌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하시며 당신 앞에서는 누구도 이웃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존재임을 밝히셨습니다.  

 

용서하라는 말은 가장 잔인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용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상이 드러나게 할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분 앞에서는 가능합니다.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는 용서가 가능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은 나의 은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조련사는 입질하는 개를 물에 빠트려버립니다.

물에 빠진 개는 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니면 자기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다른 개나 사람에게 입질할 수 없습니다.  

 

개는 자기 생명의 은인 앞에서, 형제도 부모 앞에서, 그리고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신을 하느님 자녀의 지위로 올려주시는 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용서하라고 하지 맙시다.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지위로 높여주셨음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까요?

용서는 우리 앞에 계신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 죄가 용서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래서 지옥에 가야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지위에 올려주신 분임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분 앞에서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어떤 형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서 임금으로부터 사면장을 들고 사형 선고받아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왔습니다.

혹시 풀려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형의 말에 동생은 먼저 판사를 죽이고 그 다음엔 자신을 신고한 이를 찾아가 죽일 것이라 말합니다. 

 

형은 동생을 사면할 수 없어서 나오며 사면장을 찢어버립니다.

내가 만나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능력으로 나를 세우셨는지 안다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모든 용서는 오직 인간의 지위에서 하느님의 지위로 높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해 주신 그리스도 앞에서만 가능합니다.

누구도 나에 대한 권한을 지닌 분 앞이 아니면 자기 처지를 알지도 못하게 되고 그러면 용서가 불가능합니다. 

 

용서는 미움을 덮을 수 있는 더 고마운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용서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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