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5,17-30
성령께서 내리시는 자리의 조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시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순종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라고 하시듯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받게 됨을 시사하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능력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생명이기도 하시고 선물이기도 하시고 능력이기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라고 하실 때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써 성령을 받으셨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순종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성령은 권능이기도 하고 능력이기도 하고 생명이기도 하며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은 누구에게 주어질까요? 성령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최대한 죽으려는 사람에게 내립니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는 장면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사실 그의 형 ‘아도니야’가 누가 보더라도 왕위를 물려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모후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나라는 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도 제가 임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라가 뒤집어져 아우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에게서 그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1열왕 2,15)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 다윗 왕의 허락도 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합니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많았습니다.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고 모든 백성으로부터 왕으로 추대받았습니다.
하지만 왕권을 주는 사람은 왕입니다.
다윗 왕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솔로몬의 어머니 밧 세바는 이 모든 사실을 다윗 왕에게 알렸고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게 하고 자기 나귀를 태우고 왕좌에 앉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결과가 어땠을까요? 그동안 한마디도 안 하던 솔로몬은 자기 왕권을 노리던 모든 이들을 처단합니다.
솔로몬은 그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자 답답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아들이 안스러웠는지, 어머니 밧 세바가 다윗의 왕권을 자기 아들에게 오게 하였습니다.
밧 세바처럼 죽어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가져오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교회 내에서도 어떤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사제가 그것을 보지 못할 것 같지만 다 보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 앉히려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오는 은총은 가만히 있는 이의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리시는 자리를 ‘제단’이라 합니다.
요즘 ‘제대’에 대한 공경이 매우 약해졌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상을 펴 놓고 미사를 거행합니다. 미사를 거행할 때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께서 잉태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아무 곳에나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위에 자기 죽음을 합친 사람에게만 내리십니다.
야곱은 베텔에서 바위 위에서 잠들었고 그 위로 사다리가 내려지며 하늘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였습니다.
야곱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고 그리스도의 죽음 위에 성령께서 내리시는 곳이 베텔,
곧 하느님 집이라는 뜻입니다.
사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성령께서 오시도록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성령의 자리를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역할도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제가 없으면 미사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오시지 않으십니다.
제단도 마찬가지로 여겨져야 합니다.
제단이 없으면 미사가 안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고 그 위의 제물은 나의 죽음입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는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순종은 나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 뜻의 자리를 내어드림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처럼,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내 뜻으로 걱정하고 근심하는 우리는 모두 결국 내가 살아있으므로 성령께서 내리시지 않고 그래서 기분이 좋지 못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제단에 우리 죽음을 결합합시다.
그 자리에만 성령께서 내리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성령의 사람이 되고 충만한 행복과 능력을 발휘하며 살게 됩니다.
살아 움직이는 제단에서는 미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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