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6,1-6.16-18
기도, 자선, 단식이 위선이 되지 않게 하려면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사는 게 중요하다 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고 죽으려고 해야 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내가 죽는 방식이 ‘자선-기도-단식’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를 죽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살리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목적으로 가지고 사순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머문다는 말은 그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면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아무리 기도-자선-단식을 해도
위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불러내시는 이유는 나를 죽이는 것이 사랑과 영원한 생명, 곧 행복의 길이기에 나를 미워하는 삶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영화 ‘어톤먼트’의 줄거리입니다.
1935년 영국, 부유한 집안 출신인 13살 브라이오니 탤리스는 침실 창문 밖을 통해서
언니 세실리아와 가정부의 아들 로비 터너를 염탐합니다.
브라이오니는 언니와 로비의 관계를 질투합니다.
브라이오니는 농담으로 쓴 편지를 보며 로비가 점점 성도착증 환자라고 의심을 해갑니다.
이때 브라이오니의 사촌 로라가 강간당하고 어떤 남자가 도망치는 것을 봅니다.
로라와 브라이오니는 그녀를 폭행한 걸 로비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들의 증언, 세실리아에게 쓴 노골적인 쪽지를 근거로 그는 체포됩니다.
감옥에 있던 로비는 4년 후 제2차 세계 대전에 강제 참전하게 됩니다.
어느덧 성인이 된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범죄자로 몰고 간 걸 후회하고 속죄의 삶을 살기로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출판하고 언니에게 찾아가 사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이 자신의 거짓 증언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로비는 누명을 벗고 세실리아와 로비가 재결합하고 같이 가려고 했던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재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그러나 브라이오니가 나이가 들어 밝힌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사실 그녀는 세실리아와 로비를 찾아가고 사과하지 못했습니다.
세실리아와 로비는 재결합하지 않았고 로비는 덩케르크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세실리아는 몇 달 후 블리츠에서 폭탄 테러로 사망했습니다.
브라이오니는 소설에서 두 사람에게 현실에서 자신이 빼앗은 행복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그저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자전적 소설로 성공한 작가로 평생을 산 브라이오니의 표정에서는 언니와 로비에게 전혀 미안해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속죄’인데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으로 언니와 로비에게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내가 살면 누구를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자선-단식을 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집니다.
유다인들은 기도-자선-단식의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자랑으로 내세웠습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자기를 죽여야만 사랑이 가능하기에 그것을 연습하는 시간이 광야의 사순인데, 그들은 그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자기에게 재물과 명성을 많이 벌어준 책을 써놓고 언니와 로비에게 할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는 브라이오니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자기를 왜 죽여야 하고, 자기 목숨을 왜 미워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지내는 사순절은 그래서 위선이 됩니다.
나의 생명을 미워할 때야 이웃의 생명을 소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의 죽음 없이는 이웃에게 피해만 끼칠 뿐입니다.
올해의 사순은 기도-자선-단식으로 나를 죽이고 이웃을 살리는 기쁨을 장착하는 훈련의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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