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면 도움이 되고 쉬지 못하면 짐이 된다
활기 왕성한 20대 초반 겨울에 성당 청년들과 함께 지리산 등반을 간 적이 있습니다.
2박3일 코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산을 정상까지 뛰어서라도 올라갈 기세였기 때문에 남들의 짐까지 짊어지고 쌍계사에서 뱀사골까지 거뜬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무릎 인대가 늘어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틀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남에게 내 짐까지 맡기고 끝에 쳐져 한쪽 발을 질질 끌며 쫓아가야 했습니다.
어제는 제가 기다려줘야 했던 이들이 이젠 저를 기다려줘야 했습니다.
그때 왜 산에 오르면 겸손해진다고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일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일주일에 하루를 쉬셨습니다.
그리고 칠 년에 일 년은 쉬도록 법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과신하는 이들은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버는 것처럼 쉬는 날을 마련해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하면 오래 못 버팁니다.
사제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읽으며 신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사제들이 좀 더 본당을 비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고 온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고 하십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피정하라’는 뜻입니다.
현재 교구사제의 연중피정은 길어야 5일입니다.
그것도 저녁에 들어와서 오전만 하고 가니
실제로는 3일 정도라 하겠습니다.
일 년에 3일 피정!
교황청에서 정한 피정기간은 일 년에 10일입니다.
그리고 피정에 들어가서도 강의를 듣고 전례를 공동으로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습니다.
피정은 본래 광야에서 나 혼자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간 광야에서 하신 일이 피정입니다.
광야에서는 미사도 성경 읽는 것도 강의 듣는 것도 없습니다.
존재 대 존재의 만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채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침묵 중에 주님과만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피정을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피정기간이 짧은 데는 신자들의 영향도 매우 큽니다.
평일미사를 빠치면 개중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많은 신자들이 제자들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렇다고 제자들의 피정을 방해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직접 그들에게 이런저런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목자들이 없어 목말라 하는 수준의 신자들은 이미 주님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이들입니다.
목자들이 피정할 때면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침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스미르나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카르포스 교부의 일화입니다.
자고새 한 마리와 놀고 있던 폴리카르포스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성인이라 불리시는 분이 어떻게 새와 놀며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폴리카르포스는 빙그레 웃으며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 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매어 두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목자들이 쉴 시간이 부족하면 오히려 양들에게 피해가 갑니다.
그래서 양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목자들에게 쉴 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더 많이 쉬어 보다 생기 있는 영으로 신자들을 대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너무 바쁘게 사목하셔서 지쳐있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외국은 피정기간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요 휴가도 일 년에 거의 1달이고 7년을 일하면 1년은 안식년을 합니다.
그러나 저희 교구 같은 경우는 평생 1번만 안식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사제들에게 조금 더 쉬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신자들이 본당 신부님이 피곤하신 것을 보면 평일에는 우리가 공소예절이라도 하며 지낼 터이니 일주일 동안 조용하게 피정하며 쉬고 오시라고 권하는 분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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