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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1-17 조회수 : 592

사람에게 안식이 없는 이유: 물에 빠졌으면서 땅을 잊었기에!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옹호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7-28) 
 
여기서 예수님만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모든 인간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다고 하니까 안식일은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에게는 안식일이 그들의 주인입니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쉬며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있는 날인데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옥죄는 율법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왜 사람은 자신들이 지배해야 할 것의 지배를 받고 살까요? 돈의 지배를 받고 명예나 쾌락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그 집착 때문에 마음의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잠깐의 쾌락을 위해 양심을 저버립니다.
반드시 무언가는 삶의 이유로 삼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글로리’라고 넷플릭스에서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내용은 한 아이가 학교 폭력을 지독히 당하여 이 악물고 커서 복수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참으로 공감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김동은이라고 하는 아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부모는 이 아이의 합의금을 들고 도망을 갑니다.
더는 살 이유가 없는 김동은은 자살하려고 몇 번이나 건물 위에 오르고 바다 앞에 섭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그를 죽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복수심’이었습니다.
복수심은 그녀를 견디게 했습니다.  
 
만약 복수가 끝나면 그녀는 무엇으로 살아갈까요?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유를 찾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존재입니다.
짐승들이야 그저 생존하면 그만입니다.
다른 이유가 필요 없어서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유를 찾습니다.
물론 그 이유들도 동물들과 결국엔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살기 위해 찾아낸 삶의 이유는 결국 나를 지배하게 만듭니다. 
 
김동은은 복수하고 싶으면서도 복수를 질질 끌 것입니다.
빨리 끝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복수가 끝나면 어디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무석 정신분석학 교수는 군대에서 군의관으로 있을 때 계속 자해하는 군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으면 우주에 붕 뜬 존재처럼 느껴져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면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살 이유가 없는 것은 벌써 죽은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영화 ‘기억의 밤’은 자기 부모가 죽는 것을 목격한 한 아이가 부모의 복수하기 위해 평생을 기다렸는데 그 대상이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기억을 회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래야 복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을 회복한 그는 본래 매우 착한 사람이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지금의 자기보다 훨씬 착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는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더는 살 이유가 없습니다.
복수하려던 그가 자살합니다.  
 
인간이 삶의 이유를 찾는 이유는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나의 존재 이유를 정합니다.
돈이 될 수도 있고 쾌락이 될 수도 있고 권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결국 그런 것들이 없으면 나도 존재 이유를 잃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들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돈이 나의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내가 돈의 것이 됩니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인간이 지배하라고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들을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당합니다.
그것들이 삶의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에게는 안식일 법이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을 지키며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그들이 선택한 존재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 존재 이유로부터 자유로운 누군가를 보면 참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가 저절로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존재 이유를 나를 만든 분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분이 있건 없건 그렇게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야 세상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돈이나 명예, 쾌락이 존재 이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에 묶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자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세상 것의 노예가 되는 시스템에서 우리에게 어떤 선택의 삶이 더 낫겠습니까?  
 
영화 ‘그래비티’는 결국 내가 존재하게 된 이유, 곧 지구에 발붙이고 살지 않으면 우주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무엇이라도 잡으려고 하는 존재가 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을 때 우주에 떠도는 것을 굳이 붙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헤맬 때는 자신을 잡아줄 무언가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출처를 인정하지 않는 삶과 그것에 순종하는 삶의 차이가 이럴진 데 사람 대부분은 그래도 지구로부터의 자유, 그러나 우주 쓰레기에 집착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자유라고 여기면서.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고
지구에 발붙이지 않으면 우주 쓰레기라도 움켜쥐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뭍으로 가는 게 의미여야 하고 우주에 떠 있는 사람은 땅에 발을 붙이는 게 의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찮은 것에 목숨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안식이 없는 이유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분은 이제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으로 이웃의 발을 씻기 위해 내어줄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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